연휴의 끝자락에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태양은 뜨겁지만,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연을 들었다. 그녀는 인생을 사계절에 빗대어 설명했다. 봄은 배움, 여름은 열정, 가을은 성찰, 겨울은 지혜의 계절이다. 그 흐름에 의하면 나는 지금, 한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기 전, 늦여름 즘에 서 있다.
자연이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듯, 내 안에서도 어렴풋한 변화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깥으로 향하던 열정이 조금씩 잦아들고, 여유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멈춘다는 건 뒤처지는 일이라 여겼고, 속도를 줄이면 금세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음은 여전히, 여름 한가운데에 머물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나는 어디인지도 모를 정상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수확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면 자연은 속도를 늦춘다. 과일이 익기 위해서는 성장보다 숙성이 먼저다. 잎이 무성하면 영양이 분산되어 실한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는 빛을 덜 받으며 잎을 떨궈 에너지를 열매로 모은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고미숙 평론가의 강연을 들으며, 삶도 그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바깥으로 내달린 후에는 다시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중심은 바깥이 아니라,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랫동안 여름의 속도에 맞춰 살아왔다. 배우고, 성취하고, 증명하느라 온 에너지를 바깥으로 쏟았다. 하지만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 잎사귀를 떨구듯, 이제는 나도 잠시 멈춰 그 에너지를 안으로 모아야 하지 않을까?
멈춤은 퇴화가 아니라, 여물기 위한 준비다.
어느덧 10월, 추석 무렵의 한낮은 여전히 뜨겁지만, 바람은 어느새 서늘해졌다. 나의 삶도 그렇게 조용히 방향을 바꾸며 다음 계절로 들어서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