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 꾸준히 하는 게 어렵다”라고 말할 때 솔직히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책 '성장할 수 있는 용기'에서 이런 문장을 읽게 되었다.
의지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의미가 부여될 때 나타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내가 꾸준히 이어온 일들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간헐적 단식 17년, 홈트는 9년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단식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늘 공복 상태를 유지하게 했고, 그때 집중력은 최대로 발휘되었다. 홈트는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단순히 몸에 좋은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해낼 때마다 긍정적인 성취감을 주었고, 그래서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의미가 없으니 그냥 포기하라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의미는 처음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 일 수도 있다. 작은 목표를 세워 성취감을 맛보거나, 그 일이 내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 곱씹다 보면 의미가 조금씩 자라나기도 한다.
나 역시 모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아니다. 취미를 만들고 싶어 화실에 다니고 춤을 배운 적이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시작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흥미가 줄어들었고, 끝내 나에게 의미를 부여할 만큼의 가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경험들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림이나 춤보다 내게 더 가치 있는 일들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그쪽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자극이나 계기로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배우게 된다면, 그때는 지난 과정을 발판 삼아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을 기회가 충분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시작했지만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무엇에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어가지 못한 순간조차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멈췄더라도 자책하지 말자.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새로운 의미와 함께 이어갈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