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의 선택

'이것'을 해보기로...

by 희원다움

<흑백요리사>의 마지막 회가 끝났다. 처음엔 그저 '누가 우승할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청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모든 것이 끝나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우승자의 이름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요리사들의 인터뷰였다.


"요리를 선택한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입니다."

"요리할 때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요리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묘한 부러움을 느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최근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익은 업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더 이상 궁금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일할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체 그들과 나의 차이는 뭘까?'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나?'

'나도 요리를 시작해 볼까?'


말도 안 되는 공상까지 하며 그들의 인터뷰를 반복해 보고 나서야, 나는 중요한 차이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들이 요리를 시작한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생계를 위해, 행복을 위해, 혹은 우연히... 하지만 그 치열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요리에 대한 지독한 '사랑'때문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단순히 요리 기술에 대한 집착이 아니었다. 요리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요리를 사랑한다는 건,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행복까지 함께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요리사의 정성이 느껴질 때 우리가 맛을 넘어 감동을 받는 이유도 그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궁금함'에서 시작된다]

나에게 사랑은 늘 '궁금함'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하면 그를 웃게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흑백요리사> 속 요리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요리가 맛있어질까?' 이 질문은 그들을 잠 못 이루게 했다. 더 좋은 식재료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수만 번의 실험을 거쳐 레시피를 바꾸고, 생소한 재료를 공부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힘. 그 모든 고단한 과정의 연료는 결국 요리와 그것을 마주할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네 일을 사랑하니?" 안타깝지만 대답은 '아니요'였다. 내 일에서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만 해도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그 안일함이 나의 호기심을 죽였고, 성장을 멈추게 했다.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다]

그런데 문제는 일이 아니라 '일을 정의하는 방식'에 있었다. 업의 본질을 '생계유지'나 '나의 성장'으로만 정의하면 그 안에 '사랑'이라는 마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나를 위한 목적만으로는 상대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에 사랑을 더하려면, 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모든 직업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다. 그 관점으로 내 일을 다시 바라보니, 내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건강을 지키고 그가 소중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작은 행위가 누군가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일상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의 일상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돕는 중요한 것'이라고 재정의하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가 궁금해할 만한 부작용에 대해 나는 충분히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불안해하며 들어오는 환자에게 따뜻한 눈 맞춤과 미소를 건넸는가?'
'나의 진료실은 그들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고 있는가?'

사소하다고 치부했던 말투, 표정, 스몰토크 하나하나가 사실은 환자의 하루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개선해야 할 지점이 많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분명해졌다. 새롭게 할 일이 생기자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샘솟기 시작했다.


만약 나처럼 자신의 일에서 지독한 권태를 느끼고 있다면, 당신으로 인해 도움을 받을 '그 누군가'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그런 그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사소한 것 하나를 더 신경 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관점이 바뀌니 환자를 대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성취로 다가왔다. 나로 인해 도움을 받을 누군가의 삶이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 그 진심 어린 응원이 나를 다시 일하고 싶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