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베이스캠프를 지키며 성장하는 법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콘텐츠를 만들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누군가의 막막한 진로 고민을 듣는다. 정신을 차려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내가 가장 순수하게 반응하는 몰입의 영역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몰입의 즐거움들이 내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도 나는 이렇게 이 일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냉정하게 자문했을 때, 대답은 '아니요'였다. 내가 이 일들에 이토록 무결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역설적인 이유는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본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안정적 수입이 단단한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기에, 마음껏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향해 등반할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
솔직히 말해, 본업이 콘텐츠를 만들 때처럼 심장을 뛰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일은 나를 먹고살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내 역할을 다하게 해 준다. 나의 쓸모를 확인시켜 주고,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며, 크고 작은 시련 속에서도 나를 단단하게 단련시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때로는 슬럼프가 오고 버거운 순간도 있지만, 직업인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 감사할 수 없다. 여기서 나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다.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일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어쩌면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족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재미는 실력 뒤에 따라오는 그림자
어떤 일이든 일단 제대로 경험하며 그 분야에서 정점을 찍을 만큼 잘하게 되면, 재미와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잘하면 신이 나고, 신이 나면 더 하고 싶어진다. 실력이 생기면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일의 구조가 보이며, 그때 비로소 '진짜 재미'가 생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유능감의 원리'라고 부른다. 인간은 자신이 환경을 통제하고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강력한 내적 동기를 얻는다는 이론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방황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면, 차라리 지금의 일을 '잘 해내어'유능감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단단하고 확실한 독립의 길일 수 있다.
당당한 졸업을 위해
나는 지금 하는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해 멈췄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시도 중이다. 이것은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지겨운 공부가 아니다. 언젠가 이곳을 졸업할 때 들고나갈 나만의 '전략적 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렵고 짜증 나던 일들조차 빨리 깨고 싶은 높은 단계의 게임처럼 흥미로워진다.
실력이 쌓이면 선택권이 생긴다. 이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갈고닦은 무기를 들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연히 해봐야 한다. 하지만 막연히 대세에 휩쓸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다면, 그것을 찾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업무를 '잘하게' 만드는 데 집중해 보자. 실력이 쌓여 자유가 보장되는 그날, 우리는 도망치듯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졸업'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