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려 애쓸수록 괴로웠던 당신에게
<자존감이 높은 게 아니었어...>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내가 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무언가를 성취해 낸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숱한 실패를 겪었지만 '실패는 과정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줄도 알았다.
그런데 SNS를 보면, 자꾸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화려한 성공과 그에 비해 모든 게 평범해 보이는 나 자신을 자꾸만 비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교가 반복되자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을 시도들 앞에서, 나는 자꾸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생존 도구'로써 자존감>
자존감에 의문이 생기자 높이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도 스스로를 칭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해", "충분히 잘하고 있어" 같은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라는 조언이 대다수였다. 나는 이런 방식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넌 이대로 충분해"라고 말한다고 정말 자존감이 올라갈까? 대체 어떤 근거로? 나에겐 그저 근거 없는 공허한 주문처럼 들릴 뿐이었다. 문제는 방법이지, 자존감 자체가 아니었다. SNS의 발달로 원치 않아도 타인과 긴밀하게 연결된 요즘, 자존감은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켜낼 가장 확실한 '생존 도구'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보라>
이 생존 도구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해답은 뜻밖에도 '내면'이 아닌 '타인'에게 있었다. 책 '인플루엔서'에 소개된 미미 실버트 박사는 자존감이 내면을 깊이 판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때 생긴다고 말한다.
자존감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고 외친다고 생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남을 돕는 나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기여하는 이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에 가까웠다. 자존감은 자기 최면이 아니라 실질적인 증거 수집의 결과물인 셈이다.
<뇌가 보내는 신호, 헬퍼스 하이>
이 논리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 타인을 도울 때 우리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헬퍼스 하이' 현상은 내 뇌가 나를 긍정하는 확실한 데이터다. 심리학자 다릴 벰 역시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보다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며 자기를 정의한다고 말했다.
이 원리를 깨닫고 나니, 내가 왜 그토록 멘토링과 진로강의에 열중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남과 비교하며 작아졌던 나 역시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타인을 돕고 있었다. 나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 덕분에, 역설적으로 내가 나의 가치를 인정하며 살아낼 수 있었다.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셈이다.
<인생의 반경을 넓히는 가장 영리한 전략>
자존감은 셀프가 아니라 네트워크 속에서 증명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억지로 애쓰는 대신, 오늘 당장 누군가에게 기여할 작은 기회를 찾아보길 권한다. 남을 돕는 것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데이터를 수집하여 인생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가장 영리하고 전략적인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