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여자 나이 25살이 넘으면 결혼하고 아줌마로 불리며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25살이 돼보니 결혼은커녕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몰라 방황했고, 30살이 되는 순간엔 일을 하느라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내년이면 '40세, 불혹'인 중년기에 접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TV에서 학창 시절 좋아했던 아이돌이 어느덧 중년이 되어 머리숱을 걱정하고 노안이 온 것을 보면 웃프면서 내 나이를 새삼 깨닫는다.
어릴 때 상상했던 40대의 모습은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었는데 마흔을 코앞에 둔 나는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앞으로의 삶이 불안하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인터뷰에서 가수 양희은이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늘 몰랐던 나이이기 때문에 '싫다'라고 대답한 걸 본 적이 있다. 지금의 안정된 삶에 만족하기에 혼돈과 방황의 20대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이해도 되지만, 나는 딱 한 번은 과거로 가보고 싶다.
20대로 돌아가서 '저널 쓰기를 일찍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저널 쓰기를 하면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은 미래의 성공에 맞춰져 있던 삶의 기준이 '지금, 이 순간'으로 바뀐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저널에 나의 생각과 느낌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면, 마음속에서는 바위처럼 커다랬던 일이 그보다 작은 돌덩이로 변해 불안이 조금씩 줄어든다. 저널 쓰기를 하면서 먼 미래가 아니라 마음 설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어 졌다.
20대의 내가 저널 쓰기를 시작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내 상상 속의 불안을 다스릴 줄 알고 여유로움을 가진 지혜로운 중년의 모습일까?
만약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주저 없이 '지금의 내가, 이 삶이 좋다'라고 대답할 수 있길 바란다. 저널 쓰기를 통해 지금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나도 불안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중년을 맞이하기 위해, 혹은 이미 중년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면 저널 쓰기를 하자. 저널 쓰기를 통해 아이들과 부모님을 돌보느라 사라진 나의 삶을 되찾고 현재의 나를 돌보며 살아가자.
착한 사람보단 단단한 사람이 되시고, 단단한 사람보단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보단 아는 걸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덕을 갖춘 사람이 되셔서 이 험난한 세상 잘 헤쳐 나가시길....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