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에 더 이상 미안해지고 싶지 않다

하루의 주인공이 되기로 결심한 날

by 희원다움

어릴 적 나는 TV를 보며 넓은 세상을 꿈꿨다. 지방의 작은 동네, 학교와 집이 전부였던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드라마는, 내가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사춘기 시절,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보며 막연히 서울을 동경했다. 연예인들이 사는 서울,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싶었다. 서울에 가면 우연히라도 그들을 길에서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열망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와 같았던 나는, 누구에게나 주목을 받는 주인공의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TV속 주인공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드라마를 좋아한다. 어릴 때는 주인공이 받는 '사랑'과 '주목'을 동경했다면 지금은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는 반드시 시련이 닥치고 앞길을 막는 빌런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 구원해 주길 기다리며 멈춰 서지 않는다. 최근 본 <언더커버 미스 홍>처럼, 주인공은 직접 부딪쳐 문제를 해결한다. 아무리 꺾여도 다시 일어나 덤비는 그 '능동성'때문에 그는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도 매일 방영되는 드라마와 같다.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할 것 없이 내가 맡은 배역에게 매일 새로운 에피소드가 터진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하루에서 어떤 배역을 맡고 있을까?


드라마에서 조연이 되고 싶은 배우는 없을 것이다. 대사 한마디 없는 엑스트라일지라도 언젠가 주인공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희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죽어라 오디션을 본다. 그런데 현실 속 우리는 타인의 대본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내 이름 대신 '행인 1'처럼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역할이 엑스트라인지도 모를 정도로 인생 시나리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타인이 정해준 전공을 선택하고, 취업 잘 된다는 직장에 들어갔다. 별 탈 없이 누군가의 시나리오대로 문제없이 살아가는 듯했.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고,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안전하지만 타인이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계속 연기할 것인가,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내 손으로 대본을 새로 쓸 것인가. 나는 '각색'을 선택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내 의지로 승무원이라는 새로운 배역을 따내기로 했다.

주인공이 돼 보니 내 선택으로 이뤄낸 결과들은 월급 이상의 성취감을 줬고, 시련조차 내가 해결해야 할 매력적인 에피소드로 보였다. 한 번 그 맛을 알고 나니, 다시는 조연을 하고 싶지 않았다.


출근할 때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예방접종실 문을 여는 순간, 이곳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나만의 '연극무대'가 된다. 나는 이 연극의 주인공이고,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나의 관객이다.


환자와의 예기치 못한 갈등, 때로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업무, 이 모든 것은 나라는 주인공을 성장시키기 위해 작가가 정교하게 배치한 장치들이다. 주인공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에피소드를 멋지게 해결해 내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뿐이다.

연극이 끝나면 무대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며 시나리오를 수정한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다시 써보기도 한다. 내 하루의 주인공으로 살려고 애쓰는 이유는 단 하나, 나만의 해피엔딩을 쓰고 싶어서다.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은 명확하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을 각자의 인생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해피엔딩을 향해 고군분투하며 나아가도록 돕고 싶다.


인생이라는 시나리오에서,
당신의 해피엔딩은 어떤 모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