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고 싶어요" 라고 했다
얼마 전, 10년 넘게 함께 일을 하던 동료가 사표를 냈다. 미군과 결혼을 하게 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당연히 함께 있을 거라 믿었던 그녀의 퇴사는 우리 팀 모두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진짜? 저 사람이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때 한 선생님이 크게 말했다.
“크... 부럽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샘은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는데 부럽긴, 뭐가 부러워요? 관두면 뭐 하고 싶은데요? 하고 싶은 일 따로 있어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난 일 안 하고 행이나 다니고 싶어. 근데,. 샘은 일하는 게 좋아?"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무슨 일이든 할 거예요."
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녀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자리로 돌아갔다
짧은 대화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동료의 표정이 잔상처럼 남았다. "일하는 게 좋아?"라고 물을 때 그녀는 마치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듯한 의아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이토록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픈 굴레인 일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기에 당당하게 평생을 하고 싶다 했을까? 영국의 사회적 기업가 존 버드는 저서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에서 일의 본질을 10 가지로 분류했다. 그가 말한 일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저주이고, 단순히 생계를 위해 내 시간을 파는 상품이며,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하는 자유이자, 사회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직업 시민권이다. 때로는 쏟은 노력에 비해 보람이 없는 비효용이 되기도 하고, 나의 잠재력을 꽃피우는 자기실현이나 타인과 소통하는 사회적 관계가 되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를 지키는 보살핌이자, 나를 정의하는 정체성이며, 세상을 향한 이타적인 봉사이기도 하다.
사실 예전의 나에게 일은 자기실현의 수단이었다. 일을 통해 성장하며 끊임없이 나의 '쓸모'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내가 발견한 일의 의미는 조금 더 넓어졌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동시에, 이 일이 누군가를 지탱하는 보살핌이 되고 사회를 향한 봉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재 나를 움직이는 더 큰 동력이 되고 있다.
일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빅터 프랭클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를 '태도 가치'라고 설명했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라는 것이다.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지금 당장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일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가장 절실한 가치가 '휴식'이라면 일은 내려놓고 싶은 무거운 짐이겠지만, '기여'에 가치를 둔다면 일은 타인을 돕는 실질적인 방법이 된다.
결국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매일 아침 어떤 태도로 살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내가 평생 일을 하겠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로 남고 싶다는 것, 그것이 "일하는 게 좋다"던 내 대답의 본심이었다.
오늘 당신이 선택하고 발견한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