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중요할수록 미루는가
나는 실행이 빠른 사람이다. 생각이 길어지기 전에 움직인다. 일단 해보고, 부족하면 고친다. 그래서 스스로를 ‘미루지 않는 사람’이라 정의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단 하나, 5년 동안 시작하지 못한 일이 있다. 바로 '책 쓰기'다.
5년 전, 300만 원짜리 책 쓰기 강의를 들었다. 그 정도 비용을 지불했다면 충분히 실행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매일 운동하고, 외국어 공부도 했으며, 기록도 멈추지 않았지만. 유독 ‘책’이라는 결과물 앞에서 머뭇거렸다.
‘책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오늘도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현실 사이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행동 대신 논리를 조작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자격을 더 갖춰야 해’ 같은 명분을 만들어내며, 미루는 행위를 '신중함'으로 둔갑시켰다. '책 쓰기를 미루고 있다'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안락한 합리화 뒤에 숨는 것이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 조절 실패'라고 설명한다. 해야 할 일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당장 느껴지는 심리적 부담이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특히 책 쓰기처럼 결과가 늦게 나오고, 완성의 기준이 높은 일일수록 사람은 더 쉽게 도망친다고 한다.
인간은 미래의 보상보다, 지금의 불편 회피를 더 크게 느낀다. 내 이름으로 출판된 책 한 권의 가치보다, 오늘 당장 첫 문장을 써야 하는 막막함을 피하는 것이 내 뇌에게는 더 시급한 과제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다. 나는 늘 주체적인 삶과 실행을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선천적으로 게으르면 미루지만 오히려 너무 중요한 일도 미루기 쉽다.
잘하고 싶어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어설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과거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을 뻔한 뒤에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다시 ‘책 쓰기’라는 과제 앞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을까?
이제 동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준비는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동기가 생겨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 동기가 강화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행동하기로 했다.
‘책 한 권 쓰기’라는 거창한 목표를 버리고, 오늘 '한 페이지 쓰기'로 과업을 쪼갠다. 좋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함으로써 루틴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 나는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