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 먼저, 나를 알아야 했던 이유
정말 나처럼 운전 감각이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 면허를 딴 지 10년이 넘었지만, 출퇴근길이나 익숙한 집 앞 카페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고속도로를 타는 예외적인 날이 있다. 바로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에 진로 강의를 나가는 날이다.
지난주,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고등학교에 강의가 있었다. 유독 내가 강의를 나가는 날엔 비가 잦다. 안 그래도 초행길이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차에 부착된 내비게이션 화면까지 먹통이 됐다.
"아이 씨C..."
참지 못하고 육성이 터져 나왔다. 급하게 핸드폰 내비를 켰다. '목숨 걸고 강의 나간다'는 농담 섞인 진심이 절로 터져 나올 만큼 긴박한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도서관 '휴먼북' 행사로 초대를 받았다. 내 이름으로 된 종이책은 없었지만, 학생들은 내 브런치 글을 미리 읽고 와주었다. 이미 내 이야기를 접한 이들 앞에 서는 자리인 만큼, 수십 번 반복했던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처음처럼 다시 다듬고 연습했다. 강의 중, 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진로를 어떻게 설정하고 싶으세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국영수 문제집을 한 장 더 푸는 대신 '나를 이해하는 일'에 온 힘을 쏟을 것이다. 수능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일본어 수업, 음악과 미술 시간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고 싶다.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취향과 호기심, 유난히 재미있거나 싫었던 순간들을 관찰하고 기록할 것이다. 무엇보다 고전과 철학, 소설을 가리지 않고 읽으며, 편견 없는 독서를 통해 삶의 다양한 결을 미리 경험해보고 싶다.
뜻밖의 이야기에 졸음이 가득했던 아이들의 눈빛이 생기를 되찾았다. 성적표의 숫자보다 '나'라는 데이터를 쌓는 게 우선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으로서의 당부보다 내 학창 시절의 방황과 후회를 솔직하게 꺼내놓자, 그제야 아이들도 안심한 듯 질문을 했다. 그렇게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아이들의 생생한 에너지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90분이 찰나처럼 지나갔다. 강의가 끝나고 한 친구가 수줍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 꼭 간호대학 들어가서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그 한마디에 빗길을 뚫고 달려온 피로가 가셨다. 누군가에게 내가 걸어온 길이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보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돌아오는 길, 유턴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이건 분명 불치병이다....)
여전히 장거리 운전은 부담이지만, 이런 강의라면 앞으로도 몇 번쯤은 길을 헤매도 계속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