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N잡러? 난 다능인

꾸준한 딴짓들

by 희원다움

꼰대 같은 말이지만 소싯적, 국민학교를 시작으로 중고등학교 다녔던 '라떼 90년대에는' 직장에 한번 들어가면 퇴사할 때까지 붙어있는데 당연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에 전혀 이물감이 없었던 그때, 우리네 부모님들은 직장 하나로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정년퇴임을 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90년대 끝자락, 대학교에 입학한 X세대로서 졸업 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첫 직장 퇴사를 선언하자 아버지와 나는 드라마에서 볼만한 장면을 연출했다.


'저 그만두고 호주로 유학 가겠습니다'

'아빠는 뒷바라지 못한다. 동생들이 줄줄이 셋이야'

'제가 벌어놓은 돈으로 갈 테니 한 푼도 필요 없어요'

'어떻게 딸이 외국 유학을 가겠다는데 아빠가 돼서 모른 척할 수가 있겠니, 절대 안 된다. 아빠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돼!'

'아빠가 지금까지 절 위해 해준 게 뭐예요?..........'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고 호주 유학은 포기했지만, 다니던 회사를 관두는 것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엄마, 유학이 안된다면 저 승무원을 준비해서 외국에 나갈래요. 대신 아빠한테 회사를 관둔다는 얘기는 비밀로 해주세요'


이게 내 다능인으로서의 첫 발이었다. 처음 회사에서의 2년 반, 승무원으로 3년 후 가슴 뛰었던 승무원 생활에서 흥미를 잃게 되자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다. 미련 없이 딴짓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직의 성공 경험이었다. '이제 난 아무리 새로운 일이라도 해낼 수 있어!'


호기롭게 다음 행보를 이어갔다. 세 번째로 선택한 것은 뷰티학과 교수였지만 1년 반을 준비하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천만 원 이상 투자했지만 '잘못 끼운 단추는 풀어내야 한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적성에 안 맞았다. 평생, 심지어 승무원일 때조차 화장도 안 했을 정도로 꾸밈없던(?) 사람이었다. 곱게 화장하고 짧은 원피스에 높은 구두를 신고 다이어트 방법에 대해 알려주던 뷰티업계 실장경험 후 빠르게 간호학과로 유턴해 지금에 이르렀다.


2년 반, 3년, 1년 반, 7년 각각 관심이 있었던 일들을 지속해 온 시간들이다. 마지막 7년에서 한 우물을 파고 정착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간호사 생활 7년 중 3년 차, 5년 차, 현재 또 나는 곁눈질을 시작했다.


어째서지? 끈기 있게 딴짓을 하는 이유는?

적성을 찾고 싶고 천직을 찾고 싶어 수년 동안 노력했지만 흥미롭게 시작했던 새로운 일에 능숙함을 느끼게 되면 능숙함은 지루함으로 바뀌었고, 이 상태를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어느 하나를 꾸준히 하지는 못한다. 대신 주기적으로 호기심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그것이 머무는 곳에 열정을 쏟아낸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3년, 작심 3일이 아니라 작심 3년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다능인'
책 '모든 것이 되는 법'에는 멀티포텐셜라이트(multipotentialite)라고 하는 다능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많은 관심사와 창의적인 활동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사람


세상은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그중 세상에 가치를 전할 수 있으며 돈이 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행복할 수 있다. 나는 항상 이 질문에 압도당했다. 아무리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깔을 칠하며 교집합을 찾아도 천직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이 책에 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일을 매일 해야 한다면, 그렇게 능숙해져 버리면 금세 흥미를 잃고 딴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강박, 동시에 '새로운 딴짓을 하고 싶어 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당신도 분야를 옮길 때마다 꾸준하지 못함에 부끄러움, 죄책감을 느끼는가? 내가 행복하기 위해 여러 분야를 넘나들어야 한다면, 나는 누구도 찾지 않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사가 자주 바뀌어 이룬 게 없다고 느껴진다면, 하고 싶은 게 많아 뭘 선택할지 모르겠다면 걱정말자.


당신은 다능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