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치스마리아라는 본명을 가지고 9살에 세례를 받았으니 천주교 신자로 살아온 지도 30년이 넘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처럼 매달 십일조를 바치고 매일 성경책을 읽지는 않지만 주일 미사는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인생이 내 맘대로 안될 때, 절대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 그만치 했으면 충분하니 이제 그분께 맡기라고. 그리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결과가 좋으면 감사드리고 안 좋아도 다 뜻이 있으신 거라 믿고 감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 강론이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결점 투성이 신자이지만, 하느님을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모으는 주인에 비유한 지난주 복음말씀은 유독 인상 깊었나 보다. 이렇게 쓰고 싶어지는 걸 보면.
포도밭주인이 일꾼을 모으러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아침 9시에 일꾼을 찾은 주인은 한 데나리온(로마의 은화)을 주기로 합의를 하고 밭으로 보내 일을 시켰다. 오후 12시, 3시, 5시에도 주인은 일꾼들을 밭으로 보내 그와 같이 하였다. 그런데 해가 지고 품삯을 나눠주는 그때,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12시간, 9시간, 심지어 3시간을 일한 일꾼이 모두 같은 금액의 돈을 받은 것. 당연히 12시간을 일한 일꾼들은 투덜거리며 항의했고 주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친구여,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른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나는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한 데나리온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솔직히,'이게 무슨 말이지? 불공정한 처사 아닌가?' 생각했다. 나 같아도 아침 9시부터 땡볕에서 일했는데 오후 5시에 시작해 몇 시간 일하지 않은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부님 강론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생의 비극은 나처럼 자신의 포지션을 착각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우리는 마치 자신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일하는 성실한 신자인양 착각을 한다. 하느님은 9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던, 죽기 전 겨우 하느님을 알게 되었던, 그분이 주신 기회를 걷어차지만 않는다면 정당한 품삯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주셨는데 감사는커녕 불평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게 인간이다. 그저 부르심을 받은 '때'가 달랐을 뿐, 이것은 정의와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가치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직장에서 '공정한 대우'가 행해지지 않으면 불만을 품고 '욱'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꽤나 열심히 일하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데 휴가도 자주 쓰고 설렁설렁 일하는 동료들과 같은 고과점수를 받으면 분함에 어쩔 줄 몰라 심한 두통에 고생했던 적도 있다.
동료가 설렁설렁 일하는 것은 오롯이 내 기준이지만 '흥, 앞으로 내가 이거 이거까지 하나 봐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할 일만 할 거야!' 이런 볼품없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감히 절대자와 한낱 인간의 성품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나는)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손해가 생기면 분하고 억울해 씩씩거리곤 한다. 물론 세상에는 법률, 도덕적 가치, 윤리적 원칙 등 정의와 공정이 행해져야 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맺는 인간관계에서 매사에 정의와 공정을 따지며 눈곱만치도 손해보지 않으려 날이 서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때로는 밑지고 손해 보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에서 중요한 승부는 이겨야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승부는 져도 된다. 오히려 져 주어야 할 때도 있다. 무엇이 중요한 승부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삶을 사는 지혜이다. 이기는 방법도 지혜이지만 지는 방법도 지혜이다. -시니어 每日, 김영조 기자
나도 분이나 씩씩거리고 스트레스를 받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이렇게 까지 에너지를 소비할 일인가? 일을 덜한 동료 때문에 더 일을 해야 한다면 효율성 있게 처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되잖아.' 마인드를 바꾼 후 일머리가 좋아지고 '손이 빠르고 정확해 믿고 맡긴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일상에 '감사함'까지 더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감사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수많은 논문, 연구 자료를 통해 알려져 있으니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자신의 위치를 착각하는 데서부터 인생의 비극이 시작된다는 신부님 말씀처럼 감사해야 할 일 투성인데 불평할 거리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손해보지 않으려다 더 큰 가치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