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_ 반의반의 반을 읽고
급박하다는 이유만으로 옷을 대충 입고 가는 법이 없는 그녀는 우아하며 총명하다. 자식과 손주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주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녀는 너무 냉철해서 모성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가 이렇게 냉정함을 유지하는 데에는 모든 인간관계는 착취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는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훔쳐간 수경을 믿고자 한다. 그녀가 자기기만을 해서라도 그녀를 믿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경이 그녀에게서 훔쳐간 사망보험금은 그녀가 여생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이며 동시에 자신의 쓸모가 없게 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쓸모가 있음을 증명해 주는 돈이다. 그 돈을 통해 그녀는 안정된 노후를 욕망할 수 있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삶을 지키는 최소한의 통제력이 돼주었다.
그녀는 책임질 생명이 탄생한 세상에, 남편이 사라진 세상에, 그리고 덜컥 할머니가 된 세상에도 잘 적응해 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에게 희생하는 존재로서, 자식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존재로서 그녀는 쓸모를 다 해온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세상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가 죽음 전에 마지막으로 맞이한 세상은 그녀가 전혀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며, 쓸모가 사라진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쓸모가 사라진 세상에서 그녀는 노새와 누추의 사다리를 타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실감하게 되는 세상에서 요양보호사 수경의 존재는 연약해진 영실의 마음에 더없는 위로가 되었다. 자식이 돈이 없어 징역을 살게 되었을 때도,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내주지 않던, 이를 테며 천부적으로 연극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녀에게도 돌봄에 의존하는 면모가 있던 것이다. 모두 자신의 쓸모를 찾아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수경은 있는 그대로 받아준 사람이었다.
“거칠한 손으로 수경이 볼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말했다. 나는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는데 이제야 행복한 것 같구나”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던 그녀에게 수경은 기꺼이 행복이 돼주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녀에게 자기기만의 믿음으로 되돌아왔다. 마지막에 손녀가 수경을 나무랄 때, 그녀는 원래 그 돈은 없었다고 말한다. 또 수경이 선물해 준 꽃분홍색 스위터의 실값을 섭섭하지 않게 쳐주어야겠다는 중얼거림은 이미 흔들리고 있는 믿음을 어떻게든 연장해 보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그녀는 결국 수경의 속내를 어떻게든 헤아려보게 된다. 엄마 없는 수경에게 실버타운에 가기로 했다는 마음을 전할 때, 수경은 그녀가 가지 않길 바라 돈을 훔쳤다고. 눈앞에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외면하며 이 모든 게 음모라고 믿는 자발적인 무지는 어딘가 익숙한 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