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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Jun 10. 2023

어떤 배우자가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11개월 전. 부부 침실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킹 사이즈 침대의 가장자리에서 피곤해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눕힌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아기 침대에서 곤히 자면서 색색 소리를 낸다. 아기 침대는 내가 쉽게 닿을 수 있도록 나의 침대와 딱 맞닿아 있다. 아이 침대 너머에 있는 침실의 큰 창 밖은 완전히 컴컴하다. 나는 눈을 감는다. 잠이 나를 덮쳐온다. 


방금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속으로 아이가 깬 것이 아니길, 다시 잠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이의 칭얼댐은 곧 커다란 울음으로 바뀐다. 아이를 안아 올린다. 작은 아이를 창 앞에 놓인 오크색 사이드보드 가구 위에 둔 기저귀 교환대에 눕힌다. 기저귀를 새것으로 바꾼다. 아이는 이제 목청이 터져라 운다.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괜찮아. 이제 곧 밥 먹을 거야. 아이를 품에 안고 모유를 먹인다. 눈을 감고 반쯤 잠이 든 채로 모유를 먹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바라본다. 아이가 입술을 뗀다. 아이를 안아 올려 트림을 시킨다. 토하지 않도록 아이를 살짝 세워 품에 안는다. 15분이 어서 지나서 아이를 다시 눕히고, 나도 다시 침대에 누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휴대전화 시계를 바라본다. 아이를 조심스럽게 스와들 속에 넣고 아기 침대에 눕힌다. 너무 잠이 오지만, 침실 밖으로 터벅터벅 나가 주방 전등불을 환하게 켠다. 냉장고 문을 연다. 우유를 컵에 따른다. 아이를 낳기 전엔 거의 먹지 않았던 쿠키를 상자에서 꺼내 우유와 함께 먹는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달 동안은 잠과 음식 중 늘 잠을 선택했다. 그러고 무서운 속도로 체중이 줄었다. 처음으로 빈 속의 위가 소리치는 속 쓰림을 경험했다. 아이를 갖기 전에 살짝 저체중이었고, 아이를 낳을 무렵 정상 체중이 되었던 나는 체중이 빠지는 속도에 무서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는 졸음과 허기짐 중 허기짐을 먼저 달랜다. 졸음이 밀려온다. 눈을 감고 쿠키를 입에 밀어 넣는다. 몸을 끌고 다시 침실로 돌아가 침대에 눕힌다. 아이가 세 시간을 연달아 잘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눈을 감는다. 


방금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제발 아이가 다시 잠들게 해 주세요. 칭얼댐이 곧 커다란 울음으로 바뀐다. 눈을 뜬다. 시계를 확인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블라인드 틈 사이로 햇살이 밀려온다. 새벽 6시가 되어 간다. 아이를 품에 안고, 한숨을 쉬고, 눈을 감는다. 곧 침실의 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오겠지. 사랑하는 이 작은 아이를 더 이상 안고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으면 아이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아이를 침대에 두고, 밖으로 나가 혼자서 울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북쪽에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일본식 건물의 1층에 있는 초밥 레스토랑에서 남편과 처음 데이트를 했다. 약속시간에 임박해서 차를 몰고 초밥 레스토랑 문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향하며 반가움에 내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 작은 도시에 정착한 지 막 3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주차를 하고 초밥 레스토랑으로 걸어갔다. 찌는 듯한 태양이 도로를 내리쬐는 6월이었다. 당시 나는 자유로웠고, 자유를 사랑했다. 학교 캠퍼트 바로 옆에 있는 방 두 개, 화장실 두 개가 딸린 작은 콘도미니엄에서 같은 전공의 박사과정에 있는 룸메이트와 살고 있었다. 내 방 작은 책상에 앉아 13인치 랩탑을 쳐다보며 논문을 읽는 것이 일상이었다. 알람을 계속 미루다 어떤 날은 아침 7시에, 그리고 어떤 날은 낮 12시에 일어났다. 밤에 논문이 잘 써지면, 다음 날 걱정을 하지 않고 글을 쓰다 새벽 4시가 되어 책상 옆에 있는 작은 침대에 쓰러져 자고, 다음날 오후 12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저녁을 먹으며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너무 재밌으면 다음날 걱정을 하지 않고 다음 편, 또 다음 편을 봤다. 랩탑, 책상, 침대가 전부인 작은 콘도미니엄에 살면서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생각하면 되었다. 그렇게 내 일과 내 커리어만 생각했다. 사람을 만날 때는 그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났다. 그래서 재미가 없어지면 헤어졌다. 사람들을 만날 때 불필요한 여러 조건을 달았다. 키가 6피트(180cm)가 넘고, 스스로 만족하는 직장에 다니고, 자신감이 넘치지만 그래도 겸손하고,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나이도 너무 많지 않고. 목록은 끝이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많아 넘치는 미국에서 사람이 부족해서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가 데이트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결혼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 아닌 이상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직 스무 살 중반이었던 남편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7년 뒤 우리는 결혼을 했다.

2020년 Samantha Joel은 43개의 기존 연구의 데이터를 활용해 커플의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 들 중 어떤 요인이 가장 중요한지 머신러닝을 활용해서 탐색하는 연구의 결과를 내놓았다. 다양한 랩으로부터 연구자료를 모았기 때문에 그녀의 연구 데이터는 매우 다양한 변인을 포함하고 있다. 분석 결과 그녀는 과거 내가 데이트 상대를 고를 때 따졌던 나이, 교육 수준, 성격, 건강, 정치성향, 인종, 종교와 같은 개인적 요인이 초기 관계 만족도의 겨우 21%만을 설명한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아침 6시 알람에 맞춰 일어난 남편은 아이의 활동을 기록하는 앱을 통해 내가 얼마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는지 알았다. 뛰어내려오듯 침실로 내려온 남편은 "Oh my poor hunny (내 불쌍한 당신)"라고 말하며 나의 얼굴을 쓰다듬고 아이를 자신을 품으로 데리고 간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는 피곤, 짜증, 불행, 지침, 후회가 뒤섞인 얼굴로 한숨을 쉬고 남편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미역줄기 같은 몸을 이끌고 숨이 막힐 것 같은 침실을 빠져나가, 거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손님방 침실로 간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휴대전화 문자 알림이 울린다. 눈을 감은 채 나는 사이드 테이블에 놓아둔 휴대전화를 열어 메시지를 확인할지 아니면 그대로 잠에 빠져들 것인지 고민한다. 결국 호기심이 이긴다. 휴대전화를 연다.


소속감과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Greg Walton과 Mary Murphy는 Lauren Aguilar의 연구를 인용하며, 직장에서 누군가 보내는 아주 작은 제스처(예: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한 사소한 팁을 제공하기)가 외로움과 비소속감을 느끼기 쉬운 환경의 소수자의 소속감과 성취에 생각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작은 제스처가 생각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팁의 정보가 도움이 되는 것을 넘어서, 소수자 직장인들(예: 구글과 같은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직장인)이 이런 작은 제스처를 경험함으로써, 주변 다수자 동료(예: 구글과 같은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기업에서 일하는 남자직장인)가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에 기반해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덜 걱정하고 그들을 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메시지 앱을 클릭하니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이가 남편의 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편지가 사진 바로 아래 메세지로 도착해 있다.


이 작은 아이가 당신이 해준 모든 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대요! 잠을 자지 못했던 그 모든 밤들과 낮, 아이가 토하고 실례를 해 빨래해야 했던 옷들, 허리 아픔, 아이를 위해 읽었던 많은 연구물들, 불안, 좌절, 그리고 눈물 모두를 이 아이는 아직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아이는 자기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엄마가 자신을 위해 있어준다는 건 알고 있어요. 당신이 아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에 아이는 당신의 사랑과 친절만 알아요. 당신의 노력 덕분에 아이는 건강히 잘 자라고 있어요. 당신이 하는 그 모든 노력이 없었다면, 아이가 이렇게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아이와 나는 마음속 깊이 당신에게 감사하고 당신을 사랑해요!!!
The little boy above wants to thank you for everything you do! All the sleepless nights and days, vomit and pee clothes, back pain, countless hours of research, anxiety, frustration, and tears are something he can't see or understand. But what he does see and know is that his momma is always there when he needs her no matter what. He only knows your love and kindness because you are his whole world and because of all your effort he is a growing, healthy baby. Without everything you do, there is no way he could smile like this. From the bottom of both our hearts, we thank you and love you!!!


침대에 앉아 휴대전화로 배달된 남편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이 아이를 낳기 전에 읽었던 사랑에 관한 어느 의 다음 구절을 떠올린다.

냉장고에는 이미 썰어둔 셀러리와 감자가 있다. 주방 테이블 위에는 물 한 병과 말린 콩으로 가득 찬 슬로우쿠커가 있다. 슬로우쿠커 뚜껑에 요리사인 남편이 물도 태워먹는 내게 쓴 메모가 붙어 있다. "낮 12시쯤 (1) 물을 넣고, (2) 야채를 넣고, (3) 휘젓고, (4) 전기 코드를 꽂고, (5) 잊어버리세요." 그의 귀엽고 못생긴 손글씨, 나에 대한 조건 없는 믿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순서를 이행하는 사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결혼한 연인 간의 사랑은 아주 큰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부부는 당신이 맛있는 국 한 솥을 만들 수 있도록 레시피를 적어두는 것처럼 작고 단순하게 사랑을 표현한다.

손님방 침대에 누워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며칠 째 같은 잠옷을 낮에도 입고 있다. 어제는 샤워할 여유가 없어 머리를 감지 못했다. 아이를 낳은 뒤 의사를 만나러 간 적을 제외하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불행해야 했지만 남편의 편지를 읽고 나는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을 흘린다. 앞서 언급한 Joel의 연구는 상대방이 이 관계에 얼마나 헌신하는가, 상대가 얼마나 애정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가와 같은 바로 당신의 관계에 관련된 요소가 초기 관계 만족도의 45%를 설명한다고 말한다. 이건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날 때 따졌던 갖가지 조건들(외모, 키, 교육 수준 등)의 두 배가 넘는 설명력이다. 이십 대의 나는 어째서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그는 내가 맛있는 국 한 솥을 만들 수 있도록 휴대전화 메시지로 레시피를 보내주었다. 내가 자는 두 시간 동안 남편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을 잘 수 있길 소망하며 아이를 데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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