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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Jun 17. 2023

왜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 걸까

내가 일하게 될 대학으로 오퍼를 받고 며칠이 지난 뒤 나는 서재에 앉아 대학원에 다니던 시간을 떠올린다. 10년 전.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의 대학원 수업을 듣던 나는 같은 학교의 대학원에 다니는 하우스메이트와 캠퍼스 근처 작은 콘도미니엄에서 함께 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는 주방과 다이닝 룸이 있고, 왼쪽으로는 거실이 길게 펼쳐졌다. 거실에는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앉아 술과 음식을 먹거나 영화를 보던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다. 거실의 벽을 따라 그녀와 나의 책상이 둘 있었고 책상의 양 옆에는 각자 방으로 향하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이 작은 콘도미니엄에서 몇 년을 나는 그녀와 살았다.


사실 나는 그 시절 전체가 아니라 특정 하루를 떠올린다. 내 방 책상에 앉아 학과에 제출한 내 연구논문을 다시 읽고 다음 날 있을 논문자격 구두시험을 준비하던 날이다. 54쪽의 원고는 한 자도 빠짐없이 모두 내가 선택한 단어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지만, 어떤 변수가 어떤 통계적 가정을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분석 방법을 택했는지와 같은 디테일은 시험 전날 한 번 더 봐둘 필요가 있었다. 이런 작은 디테일이 다음날 구두시험에 내가 할 답변의 완성도와 나의 자신감을 결정한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에 펼쳐둔 연구 논문의 방법과 결과 부분을 반복해서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긴장한다. 하지만 내가 구두시험을 실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구 디자인과 분석과정에서 지도교수님과 많이 이야기했고 여러 피드백을 받았고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잘될 것이다. 자만이 아니라 내가 부어들인 노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다음날 구두시험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집으로 숨이차게 달려 돌아온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하우스메이트를 기다린다. 가슴에 흥분이 차오른다. 예상했던 결과라도 기쁨의 총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여전히 성공은 달콤하고, 내가 오랫동안 노력해서 성취한 성공은 더 달콤하다. 같은 학과에서 함께 논문자격시험을 보는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다운타운 바에 놀러 가 축하파티를 할 생각을 한다. 소파에 늘어진 채로 긴장이 몸에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나는 지난 오 년을 돌이켜본다.


나의 부모님은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였지만, 나는 네다섯 시간씩만 자며 공부했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학부단위로 진학한 첫해, 보고서를 쓸 줄 몰라 수업 과제들이 너무 힘들었지만, 2학기에 모든 과목에 A를 받았고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집이 부유하지 않아서 미국에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을 갈 수 있을지 몰랐을 때도 나는 GRE 시험을 준비하는 와중에 잠을 줄이고 대학원 장학금 지원을 했고 결국 장학금을 받고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노력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버나드 와이너는 인간이 자신의 성취의 원인을 "노력"과 같은 통제가능한 내적인 요인에 있다고 생각할 때 다음 성취를 향해 더 많은 동기를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캐럴 드웩은 인간의 능력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노력과 같은 요인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패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동기를 더 많이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진리'라고 믿었다. 이들의 이론적 주장을 증명하는 연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의 대학원에 진학했고, 이 '진리'를 연구하는 대학원 랩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하우스메이트가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 표정이 좋지 않다. 그녀는 참담한 목소리로 논문 자격시험에 실패했다고 내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녀의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녀와 함께 살면서 행복했던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생각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녀의 부족한 노력이 이 상황을 불러왔다고도 생각한다. 그녀가 이야기한다. 그녀의 지도교수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나의 지도교수님께 매주 연락을 해서 회의를 계획하고 피드백을 받을 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지도교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그녀가 이야기한다. 운이 나쁘게 성차별적인 생각을 지도교수를 만났고,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여학생들이 이런 상황을 겪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탓해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그럴수록 교수님께 더 자주 연락해서 교수님의 생각을 바꿨어야 한다고. 버나드 와이너는 인간이 자신의 실패의 원인을 "지도교수" 혹은 "운"과 같은 통제가능하지 않은 외부적인 요소라고 생각할 때 낮은 동기와 낮은 성취를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진리로 믿었던 나는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미국에 남았다. 그리고 그녀 없이 그 콘도미니엄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책상에 낮아 키보드를 붙들고 논문을 썼다. 주말에도 개를 산책시키기 위해 하루 세 번 밖을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붙들고 논문을 썼다. 내가 '진리'라고 믿었던 이론들을 증명하는 연구 논문을 썼고 출판했다. 내 작은 책상에 매일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면서 나는 졸업하면 대학의 조교수가 돼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졸업하는 해 박사과정 논문을 쓰면서 나는 미국에서 교수가 되는 법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워크숍을 들었다. 내가 쓸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지원서를 작성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 피드백과 교정을 받았다. 그렇게 완성한 지원서를 열여덟 군데 대학에 보냈다. 그리고 그중 단 한 군데로부터도 모두 인터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참담한 심정으로 다시 책상에 앉은 나는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더 노력해서 더 많은 논문을 출판하고 더 좋은 지원서로 지원을 하면 다음 해에는 교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내 넓은 서재의 책상 앞에 앉아 회상한다. 교수가 되어 연구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던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아내라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8월 아름다운 미국의 한 작은 섬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스무 살에는 전혀 꿈꾸지 않았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고, 승진을 하고, 갑자기 이전에 우리가 벌던 수입의 몇 배가 되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집을 샀다. 집을 아름다운 가구로 채웠다. 아이가 생겼다. 입덧이 심하지도 않았고, 음식을 먹는 게 많이 힘들지도 않았고, 움직이는 게 어렵지도 않았고, 잠을 많이 설치지도 않았다. 아이는 작게 태어났지만, 무럭무럭 자라 평균 체중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동안 나는 내가 꿈꿨던 교수가 아니라,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계약직 연구원으로 6년을 일했다. 남편을 만나 우리가 함께 지은 이 삶을 파괴하지 않는 한, 이 작은 도시를 떠나지 않는 한 교수는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은 도시에는 내 자리가 없었다. 침대 위에서 울고 보채는 아이를 안고, 낮에 잠옷을 입고, 밤낮이 바뀐 나는 불투명한 내 미래에 너무나도 불안해져 논문을 한 편도 완성할 수 없었다.


노력과 같은 요인을 통해 능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성장 마인드셋)의 중요성을 지난 몇십 년 간 연구한 캐럴 드웩은 최근 노력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거짓 성장 마인드셋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거짓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많은 교육자들이 아이들이 실패할 때 "더 노력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렴!"이라고 단순히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건 성장 마인드셋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으면서, 겨우 랩탑을 올려둘 수 있었던 대학원 시절 쓰던 나의 작은 책상은 180cm가 넘는 오크나무 책상이 되었다. 13인치 작은 랩탑 모니터 앞에 매일 앉아있던 나는 이제 34인치 와이드 모니터 앞에 30만 원이 넘는 토프레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쓴다. 그리고 나는 6년 동안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나만을 위한 이런 사치스러운 서재가 있으면서도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서 논문을 쓸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는 결과를 위해 더 이상 노력을 하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진리라고 믿었던 이론들이 더 이상 진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나는 조용히 그녀를 떠올린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차가운 시선을 보았던 스무 살의 나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서재에 앉아 내 이름이 제일 앞에 들어간 논문을 한 편도 쓰지 못한 나를 돌아본다. 나는  경험을 통해, 실패에 좌절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더 이해하고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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