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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Aug 02. 2023

유전과 환경은 얼마나 중요한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분 모두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나의 아버지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 10년 전 두 분의 첫 자녀였던 나는 추운 겨울 서울대학교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왔다. 학교 캠퍼스는 생각보다 너무 넓어서 어머니와 나는 면접 건물을 찾기 위해 차를 타고 한참을 헤맸다. 결국 길을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어서 겨우 건물을 찾았다. 건물 앞에 임시로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 나를 지켜보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차 안에서 나를 기다렸다. 면접을 다 보고 어머니와 나는 운전을 해서 다시 대구로 내려갔다. 그리고 며칠 뒤 온라인으로 내가 합격했다는 공고를 확인했다. 


첫 학기에 나는 다섯 개의 과목을 수강했다. 학교 캠퍼스는 끝없이 넓었고, 나는 그 광활한 캠퍼스를 동기들과 많이 걸었다. 친한 동기들이 많이 생겼다. 누구네 아버지는 교수더라, 누구네 어머니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더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동기 중 아무에게도 내 부모님이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나도 동기들 무리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친했던 동기들과 함께 자하연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교양과목을 같이 들었다. 이 중 한 과목은 시험이 없는 대신 한 학기 동안 총 네 개의 비평 보고서를 써서 제출해야 했다. 첫 비평 과제를 받고 나는 도서관 책상에 앉아 어떻게 보고서를 완성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대니얼 디포의 장편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비평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했고 취미로 책을 자주 읽었다. 과제로 주어진 책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비평을 어떻게 쓰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아무도 내게 비평문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도서관에 앉아서 하얀 워드프로세서 화면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했다. 그리고 절망한 나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로빈슨 크루소 비평문 예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예시 비평문을 여러 편 읽었다. 어떤 비평문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을 유럽 사회가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니 이 책에는 비유와 상징이 도배되어 있었다. 이런 글을 백지의 워드프로세서에서 창조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예시 비평문을 읽고 난 뒤 나는 더 비평문을 쓸 수 없었다. 마감일 전날 나는 내가 훌륭하다고 생각한 여러 비평문을 베껴 과제를 제출했다. 

다음 주 비평문 성적을 받았다. 내가 베껴 쓴 모든 문장에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었고, 표절을 했다는 비난과 함께 보고서 위에는 F가 새빨간 사인펜으로 크게 새겨져 있었다. 나의 어떤 동기들은 A를 받았고, 어떤 동기들은 B나 C를 받았다. 아무도 F를 받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태어나서 이만큼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 동기들은 다들 비평문을 잘 쓰는 건지, 내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것이 실수인 건지, 나는 성공할 수 있는 그 머리를 갖지 못한 건지.  


2학기에 수강했던 교육심리학개론 수업을 준비하면서 같은 도서관에 앉아 나는 교과서를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이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믿을 때(성장마인드셋이론), 성적이 아니라 배움을 목표로 할 때(성취목표지향성이론), 나의 실패 원인이 나의 지능이나 능력 혹은 운의 부족이 아닌 내가 바꿀 수 있는 노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할 때(귀인이론) 내가 더 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명하는 연구들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이론을 신봉하고 내 삶에서 실천했다. 더 많은 시간을 수업을 준비하는 데 쏟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고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요청했고, 이런 노력을 통해 2학기에는 다른 성적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2학기에 4.0이 넘는 학점을 받았다. 졸업할 즈음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내 대학생활을 바꾼 이 이론들을 증명하는 연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론들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었다. 작년 겨울 지금 조교수로 일을 하고 있는 대학으로부터 캠퍼스를 방문해서 1박 2일 동안 진행하는 인터뷰에 초청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 초대 메일은 내 연구를 소개하는 연구발표에 더해  <아동 발달> 강좌의 두 번째 챕터인 "생물학적 시작"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시범 강의를 준비하라는 안내를 했다. 내 방 서재 책상 앞에 앉아 방금 전달된 이메일을 읽으면서 나는 캠퍼스 방문 인터뷰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에 짜릿한 기쁨과 함께 짜증을 느꼈다. 이 대학에서 아무도 내가 강의를 잘하느냐를 진심으로 염려하지 않을 텐데, 대체 왜 시범강의를 해야 하는지. 결국 얼마나 좋은 연구를 얼마나 많이 출판하느냐가 내 테뉴어를 결정할 텐데. 게다가 나는 발달의 심리학적 기반에 대해 연구를 하지, 생물학적 기반에 대해 연구를 하지 않는다. 이 시범 강의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왜 이런 과제가 인터뷰에 있는지 짜증이 밀려들었다. 교과서를 확인했다. 해당 장에는 네 개의 소단원이 있었다. 1. 진화적 관점, 2. 발달의 유전적 기반, 3. 생식의 어려움과 선택, 4.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 유전 vs. 양육.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 설마 환경만큼 유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다. 노력과 열심히 일하는 힘의 강한 지지자로서, 인간 행동에 유전자의 영향에 대한 주제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장 전체는 나의 신념과 충돌하는 아이디어처럼 보였으며, 이는 노력의 본질을 무효화하는 결정론적인 관점을 소개해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연구중심대학에서 조교수 직책을 확보하는 기회를 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편견이 기회를 저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이 면접 과정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고 있었고, 이 수업을 가르칠 임무를 받아들였다. 한숨을 내쉬며, 나는 교과서를 집어 들고 의자에 주저앉아, 이 환영받지 못한 기회를 최선으로 활용하겠다고 결심했다.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읽고 관련된 연구물을 읽으면서 나의 초기 짜증은 천천히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유전은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잘 웃는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더 친절하게 대할 가능성이 높다.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재능을 꽃피을 수 있게 돕는 환경을 제공할 가능성 역시 높다. 책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책이 많은 환경을 찾아다닐 확률이 높다. 내가 환경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일부는 바로 유전자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한 환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많은 연구들이 유전과 환경의 영향은 쉽게 분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5-HTTLPR로 불리는 유전형질이 짧은 사람들은 나중에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증가하지만, 이 확률의 증가는 이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높은 삶을 살 때만 나타났다 (Caspi et al., 2003). 어떤 유전자들은 나중에 심리질환을 진단받을 확률을 높이지만, 이 확률의 증가 역시 사람들이 어렸을 때 아동 학대 혹은 아동 성폭행과 같은 매우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겪었을 때만 나타났다 (Bulbena-Cabre et al., 2018). 교과서와 관련 연구 자료를 읽을수록 나는 자연과 양육 사이의 논쟁이 내가 가정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내 관점을 크게 바꾼 책 가운데 하나인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옮음은 왜 다른가>의 저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빠와 여동생 이란성쌍둥이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둘이 9개월간 엄마의 자궁 속에 함께 있는 동안 오빠의 유전자가 “위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경험”을 덜 추구하는 유전자에 만드는데 더 바빴던 반면 동생은 이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유전자를 가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남매는 같은 집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이 둘이 경험한 세계와 환경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한 연구가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성인 여성들의 어린이집 기록을 추적한 결과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이들이 “위협”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경험을 더 추구하는 성향이라고 판단했음을 확인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이란성쌍둥이의 첫 일 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관찰한다면 우리는 선생님들이 이 둘에게 다르게 반응할 것이라는 걸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여동생이 창의적이고 기발한 작은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고 호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교 분위기에서는 선생님들이 여동생이 어른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며 오빠가 아주 전형적인 모범생이라고 오빠를 칭찬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이란성쌍둥이가 청소년이 되었고 매우 교칙이 엄격한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오빠는 이런 학교 환경에 잘 적응하는 반면 동생은 선생님들과 계속 다툼을 할지도 모릅니다. 여동생은 선생님과 같이 권위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 더 화를 내고 이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이 교칙이 덜 엄격하고 창의성을 추구하는 학교에 갔다면 선생님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잘 지내는 성격을 발전시켰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업을 준비하면서 유전적 영향과 환경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에 대해 배웠다. 어느 저녁, 나는 서재에서 펼쳐진 책과 메모로 둘러싸여 앉아 생각했다. 유전자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들이 유일한 결정 요인은 아니다. 그들은 무대를 설정하고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개인들은 그 스크립트를 가져다가 행동을 통해 형성해야 한다. 그것은 유전자와 경험 사이의 댄스였으며, 어느 쪽도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지 않았다. 이 둘을 분리하는 것 역시 사실 매우 힘들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상상을 한다. "이 수업을 통해 여러분들이 과거의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교실에 있는 어느 누구도 유전과 환경 중 어느 하나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수업을 떠나지 않도록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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