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극은 멀리 있지 않았다. 단식이 열어준 하루의 공백 속에서..
비극과 희극은 멀리 있지 않았다. 단식이 열어준 하루의 공백 속에서, 나는 몸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았다. 뜻하지 않게 비워낸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회복의 힘이 숨어 있었다.
일요일, 뜻하지 않게 단식을 하게 되었다.
몸이 모든 걸 힘들어하길래, 나도 음식을 내려놓았다.
스스로 의도한 절제가 아니라 잠시의 공백, 그 공백이 하루를 통째로 비워 주었다.
최근의 나는 근력을 되찾겠다며 아령을 들었다.
고기도 조금 더 자주 먹어주었다.
그러나 몸은 먼저 알고 있었다.
다리부터 굳어지기 시작했고, 무릎 뒤 오금은 끝까지 펴기 어려웠다.
마사지로 달래 보았지만, 잠시뿐 차도가 없었다.
단식이 시작되자 치유의 변화는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뻣뻣하던 관절이 풀리고, 몸 전체에 보이지 않는 윤활이 찾아들었다.
후들거리던 오후, 세포가 안쪽에서 정돈되는 듯한 기척이 지나갔다.
오토파지라는 말을 떠올렸지만, 이름이 중요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몸이 스스로 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리는 피하고 싶어 다음 날 아침, 흰밥 몇 숟가락으로 아침을 닫았다.
두 시간 뒤, 익숙한 믹스 커피 한 잔.
그 사소한 온기가 의욕을 깨우기 시작했다.
전날의 무기력과 우울이 한 발 물러섰고, 책상 위의 펜이 다시 가볍게 들렸다.
삶은 늘 두 얼굴을 가진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하루의 간격만으로도 장르는 바뀐다.
어제의 나는 무대 아래에서 떨었고, 오늘의 나는 한 발 올라섰다.
그리고... 돌아온 식욕은 또 다른 숙제였다.
차갑고 달콤한 것들 앞에서 나는 여전히 약하다.
어떤 날은 발이 붓고, 어떤 날은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일부, 길들이며 살아갈 부분이다.
단식은 내게 절제를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몸의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과하고 모자람 사이, 나를 살리는 한 끼의 거리.
그 거리를 잊지 않겠다고 오늘의 몸에게 새끼손가락 걸며 약속해 본다.
오늘의 몸은 내일의 문장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