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꿈도 중간에 등장했는데 그건 변호사였다. 중학교 1, 2학년 때 한동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캠프에 보낸 적이 있다. 엄마인 나는 그 나이 때 너무 내성적이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불편하고 어려웠던 데 반해, 아들은 또래가 있기만 하다면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3주간 숙박하며 팀 프로젝트로 모의 법정을 체험하면서, 직접 영어로 변론을 준비하고 판결문을 써 보았던 모양이다. 아들은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 편에 서는 변호사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유창한 영어 실력과 진심을 담은 변호 시연으로 최우수 변호인 상을 받았다.
이후 그때의 좋은 기억으로 변호사의 꿈을 키워갔다. 당시 속으로 그 성적으로는 로스쿨을 갈 수 없고 공부를 정말 잘해야 하며 돈도 많이 든다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함께 말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격려하며 정보도 찾고 책도 읽어보라며 권했다.꿈을 지지했던 이유는 뭐든지 해 보라는 단순한 희망을 불어넣어주고자 함이 아니라 아이의 성향 즉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앞에 나서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재능이 있는 성격적 특성이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상담을 전공해 진단검사들에 익숙하니 잡월드나 진로넷 같은 곳에서 아이의 성격검사나 진로 적성검사를 주기적으로 하면서 성향이 어떠한지를 객관적으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성적이 문제 되어 될 수 없다면 모르겠지만 기질 및 성격상으로는 꽤 잘 어울리는 진로 설계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야구, 수학, 통계, 법 등 좋게 보면 관심 있는 분야가 다양하고 안 좋게 보면 특별히 잘하는 것 없이 상관없는 분야를 옮겨 다닌 것 같기도 하겠다. 아이의 꿈과 관심 분야는 이 외에도 다양했고 또 대학에서 뭘 공부해야 할지 몰랐던 적도 있으나 이 모든 과정은 아이의 성장과 진로 결정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관심이 경험으로 이어지고 폭넓은 사고와 연결된 분야로 확장되는 또 다른 경험으로 이어진 것이 대학에서 더 공부하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정하는 단단한 기초가 되어 주었음은 분명하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자녀 양육의 쉽지 않은 길에서 아이에게 욕심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가끔 되새긴 시의 제목이다. 이 유명한 시를 지은 세계적인 문호가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은 교육에 대해서도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씨앗들이 자라나게 해 주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혹은 부모가 원하는 씨앗을 억지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안에 이미 심긴 특별한 씨앗이 무엇인지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존재. 그리고 물을 주고 바람과 햇볕이 들게 하는 모든 정성을 들여 결국엔 좋은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교육의 주체는 바로 부모여야 한다.
출처 : 픽사베이
젊은 초보 엄마로서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진로가 빨리 정해진 듯한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아이가 진짜 원하는 분야를 발견해 미래에 몰입에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찰하고 이끌도록 노력했다.
아이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이어가는 동안 해야 했던 일은 부모가 원하는 미래를 강요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스리고 아이의 속도와 흥미에 맞춰가도록 마음의 거리를 두되 씨앗이 자라도록 적절히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과 노력이 절대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