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하재영 작가님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를 읽었다.
♣ 작가님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살아온 집들 속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집에 대한 추억을 그리고 각자의 집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 친애하다 : 매우 가깝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다. (위키낱말사전에서 찾음)
♣ 집과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엄마의 희생을 알아채지 못했던 시절과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머니 - 나 - 딸' 그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읽는내내 머릿속에 그려져서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 집은 누군가에는 쉼터, 누군가에는 일터,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글에 한참을 머물렀다. 주부로 살면서 엄마가 되었을 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이야기 속의 엄마와 작가의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 엄마가 '했던' 일은 하루만 지나도, 때로는 몇 분만 지나도 '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 집 안 구석구석에 엄마의 손길이 닿아 있었지만 그것이 엄마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니였다.
★ 엄마는 집 안팎에서 이중노동을 하면서도 잠들기 전까지 시와 소설을 읽었다. 엄마에게 독서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정신적 공간이었으리라.
★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 언제든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가족 각자가 이룬 것은 엄마가 이룬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 집도 생명체와 같아서 아끼고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집은 생명체처럼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로서, 어디든 우리 집이 되었을 때 아빠는 바로 거기에서 다시 시작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내 삶의 새로운 시절을 시작하는 것처럼,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더 멀리 가기를 꿈꾸는 것처럼.
★ 아빠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 강인한 해결사 -을 할 수 없을 때,(사라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사라져야만 했다. 가부장제는 역할을 여성성으로, 강함을 남성성으로 환원하므로......
★ 두세 시간의 오후 산책은 언제나 나를 낯선 나라로, 내가 평생 가볼 수 있는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낯선 나라로 데려다준다.
★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면 여러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언제인가?
★ 최초의 집들은 우리 삶의 기원, 뿌리가 되어준다.
★ 언젠가는 이 집이, 이 순간이 그리워지리라는 것을 안다.
★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 각자의 안에는 그가 살아온 집이 있다. 그 집의 생김새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며,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꺼내놓을 때 그건은 다른 이들의 삶으로 옮겨갈 수 있다.
♣ 책을 읽고 어린시절 내가 사랑했던 집이 떠올랐다. 오늘 밤 나는 그 집의 작은 아이가 되는 꿈을 꾼다.
어린 시절 2층 단독주택에 살았다. 넒은 마당 한 쪽에는 큰 나무들이 있고 조경석으로 꾸며진 정원에는 꽃들도 피어있었다. 마당에는 큰 개집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느 날 시장 구경을 가서는 우리집 큰 개 두 마리와 털색이 비슷한 아기 강아지들을 사 온다. 그리고 집주인인 검둥이와 얼룩이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두 개의 개집에 아기 강아지 세 마리를 겁없이 넣어버리고는 오늘부터 너희들 다섯 마리는 가족이라고 말한다. 다행히 검둥이와 얼룩이는 텃세부리지도 않고 자신의 집 안쪽을 어린 강아지들에게 내어주고 괴롭힘도 없이 품어주었다.
어느 날은 학교 앞에서 스무 마리의 병아리를 사 온다. 그 중에서 세 마리만 닭이 되었는데, 밤마다 누구의 소행인지 병아리가 계속 사라졌다. 아침이면 병아리가 또 없어졌다며 엉엉 울며 남은 병아리들의 숫자를 세면서 오늘부터 잘 지켜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병아리가 계속 없어진 슬픔 때문에 나는 그 시절 검둥이와 얼룩이에게 더 고마움을 느낀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던 그 집은 내가 기억하는 처음의 집이다. 유치원이 끝나면 마당에서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놀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다. 마당에서 병아리와 강아지들의 일상도 한참을 참견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실의 수족관에는 큰 열대어들을 키웠는데 온도에 예민해서 수족관 속 온도계를 자주 보곤 했었다. 병아리, 강아지, 열대어의 일상을 다 참견하고서도 심심해지면 거실 옆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동생과 엄마아빠를 흉내내며 소꼽놀이를 했다. 밤이 되면 별구경을 꼭 해야한다고 2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도깨비 올 시간이라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이불 속으로 들어갔던 기억도 난다.
코로나 시기에는 그 집이 더 많이 생각났다. 어린시절의 2층집처럼 마당이 넓다면 담 안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보기라도 할텐데...하는 마음에 계속 떠올랐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은데 2층에도 굴뚝이 없어서 산타할아버지가 못 찾아온다고 보채던 꼬마 아이는 이제 뻔뻔한 거짓말쟁이 엄마가 되었다. 매해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할아버지는 하늘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셔서 바로 순간이동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굴뚝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친애하는 집은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한 장소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우리 가족의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이 담고 싶은 일상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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