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지저분하게 보는 편이다. 일단 책을 볼 때 준비물이 필요하다. 검정 볼펜. 이 볼펜으로 마음에 드는 문구에는 거침없이 줄을 긋는다. 가끔 예쁘게 줄자에 대고서 긋는 분도 있지만 나는 그냥 쭈우우욱 긋는다. 그리고 뇌의 용적이 크지 않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딱 한 번만 읽으면 금세 내 기억에서 책 내용은 날아가버린다. 기억력의 공간이 그리 크지 않은 나는 반복독서를 즐긴다. 처음에는 검정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두 번째는 하늘색 색연필로, 파란색 색연필로, 네 번째는 연두색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다. 보통은 두 번 정도 연속으로 읽고, 정말 좋은 책은 계속 읽어댄다. 읽을수록 밑줄은 적어진다. 가끔 신기한 것은 처음 볼펜으로 밑줄을 안 그은 부분에 색연필을 그을 때가 있단 말이다. 처음 독서에서 놓친 부분일 것이다. 이래서 반복 독서가 필요한가 보다. 연두색 색연필이 칠해질 때쯤이면 이 부분만 읽어도 전체적인 책의 내용 파악이 가능해진다.
예스 24 등의 중고 서점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두 페이지 이상 밑줄을 그은 책은 중고서점에 팔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을. 처음 구매 할 당시부터 중고로 팔 생각조차 안 한다는 거다. 이 책에서 내가 가져가야 할 것은 다 챙기리라.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글쓰기 관련책과 관심 있는 책을 몽땅 빌려왔는데 책이 잘 읽어지지 않는 거다. 분명 괜찮을 것 같은 책만을 빌려온 것 같은데. 제목을 봐도 잘 빌려온 것이 분명하다. 어찌 된 건지는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야 잘 읽어지고 집중도 잘되는 나인데, 공용으로 빌려보는 도서관책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면 안 되는 거니까. 가끔 빌려보는 책인데 누군가가 밑줄을 그어놓으면 독서에 방해도 되고, 기분마저 언짢아진다.
사서 보는 책과 빌려 보는 책은 장단이 너무 분명하다. 사서 보는 책에는 비용지불을 하는 대가로 밑줄을 긋든, 접던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볼 책이니까.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책은 무료라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지만 책을 결코 훼손해서는 안된다.
너무 안타깝지만 나는 주머니 사정상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모든 책을 다 살 수는 없다. 정말 꼼꼼히 살펴본 후 정말 소장할 정도의 책을 골라 보아야 한다. 습관이란 무서운 건 가보다. 책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였다니.
이제 3월이 되었고, 곧 여름이 온다고 한다. 누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싱그러운 봄 내음이 막 다가오려는 요즘. 책 읽기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