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반이 지나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은 꾸욱 닫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리, 꼭꼭 씹어 먹는 소리와 빠르게 움직이는 분주함의 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이다. 도무지 같은 공간이 맞는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이미 집 안은 공기의 움직임부터 다르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가족들이 모두 각자의 길을 향해 나가 있는 지금, 이 공간은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그 고요가 가끔은 외롭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반가워서 숨 고르듯 긴 한숨을 내쉬며 혼자 마실 커피를 준비하기도 한다.
혼자 먹는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이기 때문이다. 혼밥은 외로움을 상징하는 용어다. 이런 감정을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민망하기도 하니 핑계를 대어 본다. 가끔은 귀찮다는 이유를 대보기도 하고 때로는 시간 없음이라는 이유를 말하기도 한다.
호호 불며 혼자 마시는 뜨거운 커피는 외롭지 않다.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려나? 희한하게도 혼자 커피를 마시며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음식의 장르가 달라서일까? 누군가 합리적인 이유를 대보라고 하면 명확한 설명을 하기는 힘들다. 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혼자 마시는 커피를 더 좋아한다. 혼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외롭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주는 여유로움과 만족감의 최대치를 선물 해준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커피믹스를 타는 것처럼 쉬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뜨거운 물과 인스턴트 커피믹스 하나를 섞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나 쉬운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도 아니면서 가장 아끼는 코렐 머그잔에 작은 비스킷 한 조각을 곁들인다. 바쁜 아침을 잘 지나가게 한 나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브런치 카페가 따로 있나. 생각을 방해할 사람 없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집이 바로 최고의 브런치 카페다.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에 감싸 쥐고 소파에 앉을 때면 집 안의 구석구석까지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이때가 나만의 시간이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순간이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신데렐라에게 자정이 마감 시간이라면 나의 마감 시간은 2호가 하교하는 오후 2시 반이다. 이 시간이 처음에는 그저 텅 빈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고요가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때로는 드라마를 보며 웃고,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채워나갔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내 안을 가득 채워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괜한 허무함만 더 크게 밀려왔다. 오래전 잊고 지냈던 꿈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글을 써 보고 싶다.’
아이들이 자리를 비운 고요한 시간은 나를 위한 선물이다. 그 선물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듯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작은 다이어리를 꺼내 한 줄이라도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오늘 있었던 일, 느낀 감정들을 짧게 기록하는 수준이었다. 정 쓸 것이 없는 날에는 정신 건강에 좋다기에 감사 일기라도 써 보았다. 사소한 이야기들로 몇 줄이 채워졌다. 그러자 내 마음도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글은 고요를 외로움이 아닌, 내 안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바꾸어 주었다. 마치 목소리를 잃고 살아오던 내가 글이라는 작은 통로를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을 뒤로한 고요한 시간은 더 이상 텅 빈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고 꿈을 향해 조심스레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