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화면 속 흰 페이지는 마치 아주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조용한 사막 같다. 그 드넓은 사막의 구석에 커서가 깜빡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놈의 커서는 얼른 문장을 시작하라고 자동차의 방향 지시 등처럼 자꾸만 재촉한다.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손가락 끝은 겨울왕국의 엘사가 얼려버리기라도 한 듯 꽁꽁 얼어붙어 움직여지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뒤엉켜 소용돌이치지만 정작 첫 문장을 꺼내려니 어제 먹은 만두가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모든 것이 막혀버린 듯하다.
일단 시작하면 술술 써 내려갈 것 같은 기분인데 말이다. 그 처음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글쓰기를 위한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무서운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얀 백지. 까만 글씨로 채워야 하는 여백의 미를 자랑하는 백지가 진정으로 무섭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길 기다렸다. 첫 문장을 쓰기까지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쓴 글을 누가 읽어줄까?’, ‘혹시 아무도 관심 없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았다.
동시에 마음속에 또 다른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 ‘오늘 이 한 문장을 쓰지 않으면, 평생 쓰지 못할 수도 있어.’ 그 목소리가 나를 앞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
결국 떨리는 손으로 첫 문장을 적었다. 짧고 서툰 문장들이다. 글이 매끄럽지 않고 읽다 보면 군더더기가 많다. 하지만 그 문장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어설플지언정 첫 문장을 써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단은 썼다. 하얀 백지에 첫 문장을 써냈다는 사실은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신기한 것은 한 문장을 쓰면 글이 줄줄 써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 오늘 무슨 내용을 써야겠다고 전체의 내용을 다 생각한 후 쓰는 날도 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글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를 때도 있다. 글은 다 써봐야 비로소 마지막 이야기를 알게 된다. 글을 써야 한다. 계속 쓰다 보면 계속 생각이 난다. 계속 쓰다 보면 어느덧 글이 완성된다.
글쓰기가 조금씩 일상이 되고 있다. 문장을 쓰는 일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한 줄, 두 줄 이어가다 보니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이야기 속에 내가 몰랐던 내 마음이 담겨 있었다. 쓰지 않았을 때는 미처 몰랐다.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진짜 내 목소리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문장은 언제나 어렵다. 살짝 긴장되고 떨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떨림은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다. 이제는 글 앞에 앉을 때마다 그 떨림을 소중히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