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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an 24. 2017

그녀를 만나기 24년 전..... 그리고 지금 그곳

효창공원과 김구 선생 기념관, 청파골 숙명여대

http://cafe.naver.com/hongikgaepo



그녀는 대학교 첫 미팅 상대였고,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감각적이었고, 직접적이었다.

그녀를 보면 나르시시즘이란 그리스 신화의 신이 나타날 것처럼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학보에 깨알 같은 편지를 서로 보내면서 애교가 넘치는 편지글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지적이고 더할 나위 없는

'클래식'이란 영화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있는 그곳 그 여름, 학교 축제에 초청받았고, 금남의 공간이던 여대에 남학생들은 이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축제의 기간 동안 그 공간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청파골' 그곳의 그녀는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으나 나에 대한 비판의 글을 마지막으로 우린 서로에게 감정을 풀지 못한 채 그대로 끝나버려야 했다.

그 시절 나에겐 신념이란 게 있었고 그 신념을 공격받는다는 건 일종의 전쟁 선언 같은 거였다.

그런 그녀와의 갈등은 나의 운동이라는 일종의 종교 같은 믿음에 대해 공격받으면서 멀어졌고

좁디좁은 내 속에는 그 갈등의 틈이 마르고 갈라져 그 틈을 더 키워 건널 수 없는 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젊은 시절 피는 나를 타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민족의 생존권을 두고 처절히 평생을 바쳐오신 분들의 무덤이 있는 곳 , '효창공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는 곳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묘 또한 같이 있으며 기념관이 있는 곳이 과거 그녀의 대학 옆에 있다.

그때는 알지 못했으나 바로 옆에 그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나에겐 어색했다.

사실 그 공간은 몇 년 전 내가 힘들었을 때 이사해 살려고 했던 공간이었고,

그리고 그때 몇 년 전 보았던 아파 보이는 사람들이 공원을 걸으며 땅을 밟으며 치유를 하고 있던 공간이었다.

그 지역 분들에겐 생명 같고 휴식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

흙을 밟을 수 있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평안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그 표정을 보면서 나도 그런 표정을 갖고 싶어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게 파생되어 산으로 길을 옮겨가고, 섬으로 이어졌으며, 산과 길을 걸으며 그림과 이야기를 정리하는 요즈음 그때 힘들었던 표정이 많이 옅어졌으니 너무 고마운 공간이다.


눈으로 뒤덮인 그 공간을 걸으며 흙보다 눈을 밟는 소리도 사각사각 정겹다.

 

공원 외곽으로 걷고 돌다 보니 작은 놀이터와 쉼터가 나오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는 아이도 눈에 띈다. 혼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자신을 알리고 싶지 않은 아가씨도, 사이좋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을 잡고 끊임없이 이야기하시며 걸으신다. 강아지 스피치종을 데리고 똥을 치우는 동네 대학생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지나가고, 그들은 나라를  찾으려고 자신 한 몸 기꺼이 내주었던 의사들의 주변을 돌며 그분들의 편안해진 마음을 느끼며 흙을 밟아 돌고 있다.

마치 티베트의 포탈라궁의 외곽을 마니차를 돌리며 도는 라마 불교인들처럼,

   


   


눈을 밟으며 그대로 숙명여대 앞으로 내려온다.

과거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 무언가 더 새로워지고 높아진 건물들과 상권들에 어색함만 더해진 숙명여대 청파골이지만 그 안에 더 아기자기해지고 더 다양해진 문화들 속으로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린다.

그곳에서 숙대 앞의 아기자기함을 맛보고 추운 어둠 속으로 지금 나의 공간으로 터벅터벅 나아간다.

http://naver.me/GSvzUAgj 


201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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