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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구토

너의 이름은

그리고 나의 이름은.....

by 김태연


사람들은 자꾸 입체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공간지각 능력'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시간마저도 입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요즘 나오는 영화들은 평범한 2차원적 클래식한 영화들이 잘 없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왔다 갔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맥락을 잘 읽어낸다. 사실 영화란 장르에 편집이란 개념을 처음 들여왔을 때 사람들이 그 맥락을 이해할까 의심도 많았지만 사람들은 정면 측면 뒷면을 왔다 갔다 해도 오히려 시점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더 깊이 동화되곤 한다.

마치 내가 이 사람이었다가 저 사람이었다가 바로바로 서랍을 만들어 다중적 인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 서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건 꿈이라는 2차원적 공간에서의 기억이 경험의 끝에서 잊어버려지기 때문에 그걸 기억해내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망각의 이름이다.

하지만 단편적인 명칭의 기억은 따뜻한 정서의 기억을 뛰어넘지 못한다.

아니 비교할 수 조차 없다.

꿈을 꾸고 울어 본 적이 있는지? 나는 가끔 꿈을 꾸고 서러워 운 적이 있다.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그 경험들이 뜨거웠고, 차가웠기 때문이다.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을 꿔본 사람은 가상현실의 세계가 금방 다가올 것이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토털 리콜'이란 영화에서 기억을 주입하고 삭제하는 상황들이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이 영화는 그 꿈에 기인하여 만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 실사보다 더 실사 같은 (그림의 완성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만화영화를 보게 하는데 의의를 갖는 듯하다.

주인공에 빙의되어 그 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이영화를 보면 좋을 듯하다.


한 여름밤의 꿈이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의 꽃 시절의 감정을 나의 이름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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