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적 기록이 아니라 신문물이 들어오고 그 문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배타적이거나 적극적으로 변한 그 시대 세상에 대한 기록이다.
불과 이백여 년 전 조선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생각과 외관을 지녔다.
바깥으로 보고 싶고 나가고 싶은 것이 많은 그 시대,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은 마치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이 쌓아 올린 제도 시스템이 위협받는 것으로 여겨져 서구문물의 배척으로 분위기를 잡아간다.
하지만 '호기심' 은 인간의 본성이고, 이 호기심이 인류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게 한 힘의 원천일 진데 그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만은 그를 억제하던 그 시기 서양 종교인 '천주교'의 탄압은 그 배척의 좋은 구실이 되어 탄압하고 억압되어진다.
네 형제 중 정약전 정약용 두 형제는 그 천주교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 조정의 기득권자들로부터 정치적으로 유배당하게 되는데 우리에게 제일 유명한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달리 그 형인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대한 이야기다.
뜬구름 잡듯 성인 성현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그게 고매한 듯 여기던 때 적극적 시선의 관점으로 바라본 '물고기'와 '바다생물'의 '생태'와 '습성'을 적어내며 그것이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음을 그들은 알았을까? 아니면 겨우 200여 년 지난 후세에서 알게 된 것일까?
여전히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말하지만 계급과 착취의 구조를 팔고 사던 시대에서 바라보면 지금의 시스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세상일 수도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적극적 시선은 이렇게 조금씩 낡은 것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이로운 것들을 만들어 널리 많은 이들의 눈을 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