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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고 나서 겨울, 북한산 자락길을 걷는다.
가을 그곳을 걸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작품 두 개를 하고 나서 오랜만에 나오니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다.
겨울이 가버리면 아쉬워질 듯하여 성탄절 옷을 두툼하게 차려입고 길을 걷는다.
겨울은 산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지만 너무 노골적일 수 있어 대충 바라보며 걷는다.
테니스장을 지나 장군봉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계속 자락길 코스대로 걷는다.
저기 어디선가 경찰과 소방관이 나타난다.
멈춰 서 있는 아저씨가 멧돼지 이야기를 해주시며 산을 가르치신다.
무언가 나무 뭉터기 같은 것이 보이는데 멧돼지 엉덩이다.
경찰분이 앞으로 가는 걸 제지하며 '엽사'를 불렀단다.
자신들이 가진 총은 화약이 조금만 들어있어 멧돼지 피부를 못 뚫는다고 하면서 엽사를 기다린단다.
갑자기 그 친구들이 위협을 느꼈는지 움직인다.
순식간이다.
경찰말로는 아래쪽으로 세 마리가 도망쳤다고 한다.
정말 순식간이다.
갑자기 산 위쪽에서 '투둑투둑' 달리는 소리가 난다.
멧돼지 어미인지 덩치가 엄청난 녀석이 산으로 올라간다.
저 녀석에게 한번 들이 받쳤다간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처럼 위협적이고 세 보인다.
뒤에 계신 어떤 분이 미야자키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멧돼지 같다고 엄청난 녀석이라고 하시며 발걸음을 못 떼신다.
조금 기다리다 멧돼지들이 모두 사라지자 길이 열린다.
총 4마리의 멧돼지가 나타났다.
크리스마스에 대단한 걸 본 듯 뿌듯하다.
산에 멧돼지 조심하란 문구는 봤어도 눈앞에서 멧돼지가 뛰는걸 본건 처음이다.
멧돼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길이 열리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자락길 전망대'에서 인왕산과 안산을 바라본다.
한 달 전만 해도 울긋불긋한 가을 풍광이었는데 지금은 군데군데 하얗고 녹음이 없어져버린 시원한 풍경들 뿐이다.
좀 더 걸어가서 커다란 바위 위에 서서 더 가까이 보이는 인왕산과 안산을 스케치한다.
물이 얼고 붓이 딱딱해져서 얼음으로 스케치한다.
오랜만에 얼음 스케치다.
하늘색을 칠하는데 칠하면서 얼음으로 변해 묵직한 하늘색이 되었다.
옥천암 방향으로 계속 걷는다.
흰 눈이 많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녹아서 계절을 알 수 없는 곳도 있다.
'탕춘대성'이 80미터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탕춘대성 방향으로 오른다.
몇 년 전 친한 동생과 지금은 그 친구의 와이프가 된 여자친구와 함께 새해 일출을 보러 올랐던 곳이다.
무지 추웠는데 그때 가져간 사발면으로 입을 녹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벌써 그 둘의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닌다.
계단을 올라 탕춘대성이 있을 곳에서 두리번 거린다.
내 기억으론 작은 암문이었는데 지금은 산성터만 남았다.
눈이 의심스럽지만 안내 문구를 보니 붕괴되어 무너진 듯하다.
상명대 후문 쪽으로 내려간다.
상명대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산에다 지은 학교여서 산을 타고 내려가고 올라가는 기분이 들게 하는 공간이다. 상명대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는 건물들이 다 쉽지 않게 지은 듯하다.
평지가 아니라 각도가 꽤 심한 곳의 건물들을 따라 '홍제천'으로 내려간다.
'춘원 이광수의 별장터'가 있다는데 아직 찾진 못했다.
겨울 홍제천이 눈이 쌓여 아름답다.
쌓인 눈을 보며 내려가다 '옥천암'부터는 눈이 다 녹았는지 길이 깨끗하다.
'포방터시장'을 거쳐 '홍제동 성당'에서 아기 예수님이 모셔져 있는 공간을 본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아기 예수님도 무사한 멧돼지들도 모두모두 기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