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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Aug 01. 2016

한여름 밤의 설악산

대청봉, 중청봉, 천불동, 천당폭포, 비선대, 신흥사, 동양화, 한국화

http://cafe.naver.com//hongikgaepo

산을 두 달째 끊었더니 금단현상이 심각하게 왔다.

체형에도 변화가 생기고, 식습관도 달라지는 심각한 현상을 야기하는 것 같아 이번 주말을 기해 산을 다시 가보고자 했다.

가도 가도 봐도 봐도 아름다운 산은 어떤 산일까?

원래 이 아름다운 산을 가려던 건 아닌데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진퇴양난' 다른 경우의 수들이 사라져 버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        


밤 버스를 타고 간다.

밤 버스는 자정 가까이 출발하고, 그 버스는 새벽 3시경 잠에 취해 비몽사몽간에 있는 우리들을 깨워 '한계령'과 '오색약수터'에 각각 떨어뜨려 놓는다.

오늘 나와 내 친구가 가기로 한 곳은 '오색'을 통해 '대청봉'을 거쳐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제일 심플하면서도 제일 아름다운 구간이다. 또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새벽 공기가 생각보다 후덥지근하게 다가온다.

몇 년 전 한여름밤의 야간 산행을 했던 지리산은 시원하면서 춥기까지 했었는데 이 후덥지근함은 그때와 다른 지역의 기온 차이일까? 날씨가 용을 쓰면서 여름임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일까?            




3시가 가까워지자 '대청봉'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렌턴을 머리에 쓴 많은 산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나간다. 오늘은 처음 가는 친구가 함께하기에 빨리보다는 시간 내 완주를 목표로 꾸준히 부지런히 걷는다.

나 역시 두 달간의 공백 때문에 힘이 부치는지 자주 갔던 익숙한 길이지만 마치 새로운 길처럼 점점 속도가 처진다. 하지만 산은 가장 빨리 오르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거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는 산의 정상을 1.5킬로쯤 남겨놓고 태양의 떠오름을 맞이했다.

올해 1월 1일에 봤던 그 일출은 보는 게 중요할 때가 있지만 오늘은 느끼러 온 것이기에 후회는 없다.

'뭐 어느 장소가 중요하겠는가?'

이렇게 설악, 이산의 한 곳에서 '다람쥐들'과 '작은 새들'과 '온갖 여름풀 꽃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게 더 중요한 것을....

하지만 인간이란 간사한 것, 목적성이 떨어지니 몸은 더더욱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쳐지고, 오히려 처음 온 친구에게 앞장서는 기회를 준다.            



몸의 무게를 이기며 잠시 앉았는데 누군가 나를 깨운다.

“ 여봐 이 친구 여기서 자면 안 되는데...”

나이 드신 노 산우의 목소리에 눈을 깨어보니 잠깐 앉았다 걷는다는 게 산의 바위에 정신을 잃듯 쓰러져 있었나 보다.

'아! 잠을 못 자서 이런 것일까?'

'어제저녁을 충분히 먹지 못해서 이런 것일까?'

'산과의 인연을 몇 달간 끊어서 이런 것일까?'

잠을 물리치고 정상까지 400미터라는 표지판을 보고 힘을 내서 올라간다.

'원래 이산이 이렇게 높았던가?'

400 미터면 500미터 달리기보다 100미터가 모자란 거리인데 마치 40킬로인 듯 끝이 안 나타난다.

그래도 하늘이 보이고 계단이 아니라 길로 돌아가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무언가 다른 공간에 가고 있다는 기분이 다리에 힘을 넣어준다.          

      

마지막 돌아선 곳에서 보이는 ‘대청봉 표지석’ 그 앞에 친구가 앉아있다.

여러 차례 찍었던 그 표지석 앞에서 사람들은 줄을 서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고, 나는 그 옆의 널따란 바위에 앉아 얼려온 제주감귤 음료수를 따서 친구와 나눠마신다.

일종의 자축 술을 대신한 음료로 정상에 오면 따야지 하고, 가져온 제주도 음료수인데 날이 더웠는지 얼려온 음료수에 미지근함이 감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산에 오르지 않았는가!

사방을 둘러보니 안개로 바다의 위치도 안보이고, 수많은 바위의 아름다운 조각들도 안 보이고 바다 항구의 불빛과 모습도 보이지 않아 친구에게 미안했지만

‘다음에 다시 와서 봐, 오늘은 힘들었지만 여기까지야’

하는 산의 목소리가 들려서

나름 서로 만족하며 '중청대피소'로 내려온다.            




기대하던 아침을 먹고, 화장실을 탐색한 후 늦어진 산행을 조금 서둘러서 가기로 한다.

다음 기착지인 ‘희운각 대피소‘까지 가는 길에 절경이 많으니 서둘러 그 모습을 보러 움직인다.

하지만,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는다.

‘제주 한라산 영실코스‘로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가면 ‘영실기암과 500 나한‘의 모습을 약간의 안개가 어우러진 모습으로 완벽하게 볼 수가 있는데 10시 버스를 타고 가면 안개로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던 그 10시 버스의 저주에 대해 이야기해 줬더니 글을 쓰는 친구인데도

'그래?' 하면서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그 엄청난 비밀을 말해 줬는데... 네가 요즘 글을 끊어서 그런 것이야’

하며 나름 나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한다.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길의 계단에서 안개의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무언가 움직이는 느낌, 그 안개가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움직이더니 나타난 것은 '수천수만 개의 바위 조각 모습들' 그것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 이곳이 정녕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인 건가?’

잠시 선조들의 마음이 된다.

시를 쓰더라도 저절로 시인이 되겠다.

그림을 그리더라도 명작이 나오겠다.

하지만, 물감을 먹과 붓을 놓고 왔음을 다시 자각한다. 이런!!!!

뒤져보니 예전에 쓰던 망가진 플러스펜 하나가 있다.

이런 이 펜은 망가져서 굵기 조절도 안 되는 건데...

하지만 이 절경을 보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음이 너무 아쉬워 그냥 아쉬운 데로 모양을 잡아간다. 굵기 조절이 안되면 모양이라도 있지 않은가?

나름 위안과 변명을 하며 30여분 신선이 되어 본다.    




그곳에서 그 아름다움 속에서 취해 있다가 먼저 내려간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뒤따라간다.

내려가는 길에 내가 그전에 보지 못했던 눈에 가려져 있던 그리고 무심함에 지나쳐 버렸던 아름다운 폭포와 봉우리들이 다시 그 모습을 보인다.

마치 내가 여기 처음 온 것처럼 그 모습들이 신선하고 아름답다.

물의 색깔들은 물이 없는 듯 있는 듯 투명하고,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옅은 옥색을 띤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물과 나무들을 가진 우리가 무엇이 아쉬울까?

무엇이 더 욕심이 날까?'

자연은 켜켜이 쌓인 작은 욕심의 묵은 때들을 밀어주는 전문 때밀이 같은 역할을 해준다.

오늘 하루, 아니 오늘을 하루로 인지 하지 못한 시간 속에서 그 ‘천불동 계곡’의 아름다움은 ‘천당폭포’를 시작으로 ‘오련폭포’와 ‘귀면암’에 이르러 ‘비선대‘까지 끝없이 내려 이어진다.

마치 조물주는 이제껏 내가 세계 어느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천재 화가임에는 틀림없다.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그냥 세상이란 화폭에 그려 넣고 계셨다.   


  


중간 기착지인 ’ 양폭대피소‘에 머물러 물을 마신다.

화장실에도 들릴 요량으로 짐을 맡기고 움직이는데 ‘장지뱀’인지 ‘도마뱀’인지 귀여운 녀석의 재롱 쇼가 입장료도 없이 상영 시작 공지도 없이 바위와 철계단 틈에서 이루어진다.

이 귀여운 녀석의 쇼는 내가 또 이 설악에서 느끼는 아기자기함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경계를 하면서도 멀리 사라지지 않는 녀석의 재롱이 중년 남성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비선대’까지 얼추 제시간에 도착한다.

‘비선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호젓한 산길이 시작된다.

비선대 밑에 있던 '커다란 휴게소'는 밑으로 내려 보낸 지 몇 년 되어 이제 바닥에 그 휴게소가 있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알게 시멘트 바닥 표지석에만 남아있다.

다행이다. 늦게라도 우리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걸 깨닭아서....

산은 그대로 그들이 스스로 조각한 대로 남겨주는 게 그 산을 대하는 우리들의 소망이고 마음가짐이다.

호젓한 산길 속에서 그 숲길로 휴가를 즐기러 온 몇몇 가족을 만난다.

그들이 그 위쪽의 아름다움을 접했든 안 했든 그들은 그만큼의 호젓한 산길로 만족을 얻었으면 된 것이다.

그들에게 애써 위에 올라가면 뭐가 있고 뭐가 있는데 하면서 쓸데없는 자랑을 하는 것은 교만이요 하찮음이다.



한 시간여 호젓한 산길의 끝에서 익숙한 ‘신흥사‘의 철불과의 조우는 이제 오늘의 여정이 끝나감을 그래서 아쉬움을 느끼게 해준다.

입구까지 20여분 걸어내려 가 친구와 만난 후 'c지구 상가'로 내려가 시원한 맥주와 함께 힘들고 고단했지만 오늘의 산행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서로의 표정으로 읽어낸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 타자마자 잠깐 잠에 드는데 비가 한번 시원하게 쏟아 내린다.

와 오늘 산행은 이렇게 퍼펙트하게 마무리까지 시원하게 적셔주는구나 생각하니

잊지 못할 즐거운 여행이었음을 다시금 정리하게 한다.

      


20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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