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대로 살자!
인생은 그렇게 심각하게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다소 예민하고,
남을 의식하며,
깊은 고민속으로 침잠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투를 바꾸라는 제목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내가 모르는 나쁜 말투가 있을까?
그것 때문에 괜히 불리해지는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함이 올라왔다.
기왕이면 말 하나 잘해서
빡센 인생에 기름칠 좀해서 쉽게 가보자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읽다보니 모든 챕터에 거의 다 줄을 쳤다.
간과했던 부분들,
돌이켜 반성하게 되는 것들이 꽤 많다.
생각보다 꿀팁들이 많아서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읽다가 어떤 직원분과 통화할 일이 생겼는데
바로 꿀팁들을 적용하니
상대방도 좋은 말투로 보답해오는 것이 느껴져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직선으로 얘기하지 말고 곡선으로 말하라.
말끝을 올리지 않고 내리면, 훨씬 더 신중하고,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차갑고, 냉정하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다 보니, 또 ‘친절하게 대하면 만만하게 볼 거야.’라는 고정관념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생겨서 날카로운 말투를 사용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사람은 받은 만큼 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직선으로 뾰족하게 말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뾰족한 말투를 사용할 것이고, 내가 곡선으로 따뜻하게 말하면, 상대방도 따뜻한 억양으로 보답할 것이다. 그러니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택하길 바란다. 어딜 가든 환영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말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처럼 말하라.
안타깝게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는 세일즈맨 또는 강사를 보게 된다. 세일즈맨이라면 상품을, 강사라면 강의 주제를 더 빛나게 해야 하는데도 그걸 간과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마음에 둔 사람 앞에서도 본인 말만 끊임없이 하기도 한다.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도 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연이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질문을 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신이 나서 말하기 마련이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주연이 되는 셈이다. 비록 나는 조연이 될지라도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단답으로 대꾸하던 사람도 흥겹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당신은 맞장구만 쳐주면 된다. 놀랍게도 대화가 끝나고 헤어질 때 당신은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역시 말씀을 너무 잘하시네요! 오늘 좋은 얘기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있을 겁니다.”라며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는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심지어 그 모습에서 희망까지 느껴진다.
상대방의 특권의식을 자극하라
상대방의 특권의식을 자극해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 있다. “원래 안 되는 건데.”, “아무에게나 해드리는 게 아닌데.”, “너한테만 해주는 거야.”라며 상대방이 특권을 누리는 듯한 기분을 심어주는 것이다.
당신이 옳다는 말 한마디
제법 효과적인 한마디가 있다. 바로 “당신이 옳습니다.”이다. 상대방이 옳지 않아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건 본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신이 옳다.”라는 말을 하기를 상당히 힘들어하는 듯하다. 예상컨대 초·중·고등학교 학창 시절부터 대학, 취업까지 상대평가로 경쟁하는 구조에서 성장해 온 영향이 아닐까 한다. 상대방이 옳다고 하면, 내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나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옳다.”는 말 한마디로 부드러운 분위기부터 만들어 놓고, 문제를 풀어나가 보자.
빌런에게는 조언을 구하라
나를 힘들게 하는 그에게 반대로 친절하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솔직히 빌런은 나에게만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 모두를 괴롭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언제나 외롭다. 그 누구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 않으니까. 이에 따라 누군가가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주면, 빌런으로 낙인찍힌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잘 대해준다. 그러므로 무조건 적대시하기보다 마음을 여는 게 좋다. 다만, 여기에서 핵심은 ‘비교적’이다. 사람의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김민성 - 밀리의 서재
사실 나는' 당신이 옳다는 말 한마디'가 참 어렵다.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간 순간부터
내 감정은 땐땐해지고, 약은 있는대로 바짝 올라왔는데
"당신이 옳습니다.....라.. 성인군자도 아니고 가당키나 해???"
라는 반응부터 올라온다.
"약점만 걸려봐라 바로 히비 파주겠다!" 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그때부터 내 마음은 지옥불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얻는 건 뭐였을까?
그런 감정적 대응으로 얻는 건, 잠시나마 상대를 밟았다는 우월감.
그것도 잠시, 시원찮은 께름한 감정만 남는다.
이럴 때 나의 결론은 법륜스님 말씀으로 돌아간다.
인생은 그렇게 심각하게 살 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내 자존심 상했고
니 자존심도 함 상해보라며,
나 건들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세우고
날카로워질 만한 대단한 일이 없단 말이다.
그냥, 거리두기를 하기로 한다.
건강한 거리두기.
내치고 짓밟는게 아니고
너와 나의 거리는 딱 여기까지.
그사람이 끌어내리는 바닥까지 쫓아가지 않고,
내 자리에서 존엄하게 거리를 지키기로 한다.
너의 존엄을 지켜주고,
나의 존엄도 지키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