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관 (4)

주부의 살림 - 가정을 살리는 참 사랑

by 사립탐정 진 앤 송

그 시절 아내들이 바깥일까지 병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가족>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이 집안에서 육아나 살림을 어느 정도 서포트해주고 가족 구성원의 쪽수가 많기에 일을 나눠서 맡을 수 있어 한 사람당 떨어지는 부담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던 것이 변형되어 남편은 바깥일을 전담하고 아내는 Only 가사에만 매달려야 하는 구조가 된 것은 현대 부부중심 가정, 이른바 <핵가족>이 되면서부터입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들로 구성된 핵가족은 대가족과 달리 아내에게 모든 살림과 가사의 부담이 집중되며 남편이 바깥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서포트를 다 떠맡아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애초에 핵가족 자체가 가정주부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경제구조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와이프가 모든 내적인 관리를 다 떠맡아 주고 있기에 남편들이 바깥일을 하는 게 가능한 것입니다.)




(회사원이 평일에 8~9시간씩 근무할 수 있는 것은 집안일을 모조리 떠맡아주는 전업주부가 있음을 전제로 한 시스템입니다.)



(결혼을 통해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가사노동력이 확보되는 것이 핵가족의 기반입니다.)



(1인 가구들이 퇴근 후에 아무 것도 못하고 지쳐 자빠지는 이유가 <살림을 맡아 줄 주부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이 바깥일로 버는 돈은 <애초에 전업주부의 몫이 포함된> 돈입니다. 그 돈으로 부족하여 주부들이 맞벌이에 나서면서 핵가족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0세기형 산업구조 자체가 전업주부의 희생에 기초합니다.)



당연히 그런가보다 했던 9시 출근, 18시 퇴근이라는 근무시간이 알고 보면 집집마다 전업주부가 있어서 모든 살림을 떠맡아주는 것을 전제로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살림을 해줄 주부는 없는데 근무시간은 그대로이니 현대 1인 가구들은 지쳐 자빠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체력 탓을 하면서 말이지요.



전업주부의 가사와 육아 등 살림과 돌봄이란 이렇게 크나큰 가치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돈을 벌어오는 것을 처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여기는 놈들은 아내가 해주는 살림과 육아를 돈을 주고 사람 써서 했을 때 본인 월급이 남아날지 견적을 내봐야 합니다.


(과연 그래도 지가 벌어오는 돈이 온전히 자기 돈일까? 적자나 안 나면 다행이지요. 남편들이 바깥일로 벌어오는 모든 돈은 살림하는 아내의 몫이 포함된 액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돕는 배필들의 보살핌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 과연 그 가치를 깨닫고 인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했습니까?


정말 유감스럽게도 전혀 아닙니다.


아내들이 집안 살림을 온전히 맡아주는 것으로도 솔직히 말해서 본인 몫을 다 한 것이고 맞벌이까지 해주면 원래 했어야 할 몫보다 그 이상을 해내는 것임에도 뭐가 그리 당연합니까?


맞벌이를 하지 않고 전업을 한다고 하면 집구석에 앉아서 남편이 벌어주는 돈만 쓰고 있는 백수 취급에 좀 더 가면 기생충에 식충이 취급이나 하고 밥순이니 부엌데기니 폄하하고 무급 파출부에 종년 취급이나 하는 게 이 나라 남편들과 시가들의 아주 많은 비율입니다.


게다가 아내와 엄마의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본인 스스로가 뻔히 알고 있을 선배 보좌관들, 즉 시모들이 후배 보좌관들인 자신의 며느리들이 살림만 전담하고 있으면

아들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며 구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를 넘어 일상다반사이니 이건 뭐 아는 사람이 눈깔 뒤집으면 더 무섭다는 겁니까?


맞벌이를 안 하고 살림만 돌보는 며느리를 박대하고 괴롭히는 시모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보좌관이 흑화된 버전>이라 해야 하겠습니다.


게다가 오랜 세월 아들을 낳겠다고 태어나지도 않은 딸들을 낙태시켜 죽여 대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찔할 지경입니다. 출산하기 전에 태아의 성별을 미리 감별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아들을 낳겠다고 딸들을 죽여 놓고 그 아들들이 장가 못 간다고 걱정하고 이제 와서는 출산율이 떨어진다며 인구감소와 국가소멸을 걱정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염치를 무슨 바닷가 넙치한테 맡겨놨나 싶을 지경입니다.


살림이란 원래 불교용어로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본 탐정은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아내와 엄마가 가족을 돌보는 살림은 말 그대로 살리는 것입니다.


가정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그들이 하루를 살아있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위기 속에서도 살아내게 하는 힘의 근원이 살림입니다. 이래서 아내의 옛말이 <안해> 즉 집안의 해와 같다고 했나 봅니다.


사랑한다는 말과 살아간다는 말이 참 어감이 비슷한데 살림을 해준다는 것은 아내와 엄마가 남편과 자녀에게 베풀 수 있는 참 사랑의 표현이자 실천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귀하고 귀한 섬김을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무시하고 폄하하고 비웃고 짓밟았으니 오늘날 그 업보가 쌓이고 쌓여 비혼 비출산 증가, 출산율 폭락, 인구감소에 이어 국가소멸의 위기로 돌아온 것이라 봅니다.


이제 와서 복구되고 회복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기도 한데 그 무슨 출산율 감소에 따른 국가소멸이 아무쪼록 우리 살아 생전에만 안 왔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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