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로, 천년여왕 (2)
사랑하는 이와 최후까지
by 사립탐정 진 앤 송 Mar 10. 2026
전편에서 온갖 계산기를 두드리며 하지메에게 접근해 플러팅을 하며 연애를 시작한 천년여왕 야요이는 진짜로 하지메와 사랑하게 되어 지구와 지구인의 편에 서기로 큰 결심을 합니다.
도시를 덮쳐오는 거대한 쓰나미를 혼자 맞서 막아내는 등 지구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된 야요이는 고향인 라 메탈 행성 입장에서는 이적행위였기에 그녀에게 반대하는 부하들과의 갈등, 부하들도 야요이 편을 드는 부하들이 있고 본국인 라 메탈의 지령을 받아 반대하는 부하들로 갈라져 갈등이 있었고 라 메탈 행성에서 파견된 요원들과의 갈등으로 골치를 썩입니다.
이로 인해 라 메탈 행성에서는 후임 여왕을 보내 야요이를 갈아치우려 했고 마침 임기가 다 되기도 했기에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 지구는 끝장이 날 것을 알았던 야요이는 후임과 맞짱을 떠서 죽여 버린 후 임기를 셀프 연장합니다.
하지메가 내어준 설계도는 천년여왕의 기함을 새로 만드는데 잘 쓰였고 이 우주선이 바로 주제가에 나오는 <썬더버드 호>입니다. 원래는 지구인들을 잡아들여 라 메탈 행성으로 압송하는 노예선이었지만 이제는 지구인들을 지키는데 잘 사용될 예정입니다.
하지메의 노력으로 야요이는 세렌과 극적인 화해를 하여 자매 간에 원팀이 되는데 훈훈함도 잠시 암흑혜성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이대로라면 지구는 확실하게 박살이 날 위기였습니다.
게다가 야요이와 세렌의 어머니인 라 레라 여왕은 암흑혜성의 접근은 숙명이며 지구를 희생시키는 것이 라 메탈을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그 자매에게는 지구를 보호하고 어머니를 설득해야 하는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결국 세렌이 어머니를 만나러 라 메탈 행성으로 향하고 야요이는 독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썬더버드 호를 몰고 암흑혜성을 들이받아 자폭하는 것이었습니다.
(헤어지기 싫으니 같이 가겠다고 징징대는 하지메에게 싸대기를 날리며 지구를 다시 회복시키려면 네가 필요하다고 팩폭을 날려주기도 하지만 냉정함도 잠시 눈물로 작별 인사를 합니다.)
(떠나는 하지메에게 두 팔을 뻗어 보이는 야요이. 어쩌면 하지메가 떠나지 않고 그냥 옆에 남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이렇게 작별한 후 야요이는 천년여왕의 모든 힘을 끌어 모아 우주선과 함께 암흑혜성에 자폭하고 없애버리는 데 성공합니다.)
(라 메탈 행성에서는 라 레라와 세렌 모녀가 야요이의 최후를 지켜보며 펑펑 울고 지구에서는 하지메가 야요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만화는 막을 내립니다.)
극장판에서는 암흑혜성이 아닌 지구를 침공해 온 라 메탈 침략군에 맞서서, 야요이가 자기 엄마에게 반기를 들고 지구 편에서 싸우다가 사망하는데 심지어 엄마를 죽이고 상처가 악화되어 죽습니다.
야요이의 시신을 보며 작별인사를 하는 하지메에게 야요이의 심복이었던 라 메탈 여인이 당신과 여왕은 훗날 다시 태어나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그게 바로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철이입니다. 천년여왕 극장판 때까지만 해도 야요이는 메텔의 어머니가 아닌 메텔과 동일 인물이었으며 철이는 하지메의 환생이라는 설정이었습니다.)
야요이와 하지메의 모습은 대충 봐도 메텔과 철이가 겹쳐 보이는데 실제로 국내에서 방영될 때 하지메의 이름도 철이였습니다.
이랬던 것이 TV판 후반부에 갑자기 설정이 변경되어 야요이가 메텔의 엄마 프로메슘이 되었고 만화 원작에서는 아예 죽지도 않고 멀쩡하게 살아서 엄마와 화해하고 라 메탈 행성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2001년에 방영된 <메텔 레전드>에서 야요이와 메텔은 모녀관계로 확정되었고 그때부터 천년여왕이 메텔의 엄마라는 그 설정이 고정되어 알려진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천년여왕을 메텔로 알고 계신 분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목이 왜 <사랑의 기로>일까 하니 마지막 야요이와 하지메의 이별 장면 때문입니다.
천년여왕의 원본인 카구야 히메 설화에서도 카구야 공주와 천황이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작품에서도 불혹에 접어드는 본 탐정을 참으로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만화영화 보면서 울어본 게 오랜만이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보면서 울어보았고 중학교 때 <요정 컴미> 마지막회를 보면서 울어보았는데 이 나이에 천년여왕 마지막회를 보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뻔하게 죽을 자리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따라갔을까, 아니면 하지메처럼 잠깐 뻗대다가 싸대기 한 대 맞고 바로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본 탐정이 저 상황이었다면 알겠습니다, 하고 일단 돌아서서 나가는 척하며 우주선 한 구석에 숨어 있다가 썬더버드 호가 이륙하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여기 있었지롱~>하면서 나타날 것 같습니다.
뒤에 남아서 펑펑 울고 자빠져 있느니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맞이하는 기쁨을 택하고 싶습니다. 너도 죽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렇게나 사랑하던 분을 사지로 보내고 혼자 살아서 뭐하겠습니까?
극중에서의 하지메도 야요이를 그렇게 보내고 과연 제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요?
(만화 원작에서 하지메와 야요이는 그나마 살아 있는 채로 인사를 나누고 작별하지만 이후 하지메는 야요이가 떠났던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는 슬픈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인간의 시간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도 하루가 천 년처럼 소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도 하루가 천 년 같이 엄청 길게 느껴지듯이요.
나의 젊음을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라는데 누군가의 첫 사랑이 되는 기쁨은 아무나 맛보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의 마지막 사랑이라도 되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행복이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분을 서로 소중히 여기고 더 아껴주시고 피차 순종하며 행복하게들 사시기 바랍니다. 혹시 알겠습니까?
이 남자가 우주를 누비다가 내게 꽂혀서 지구로 내려온 하록 선장일지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하려고 라 메탈 행성에서 날아온 천년여왕일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