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흥신소, 그리고 탐정 (1)
문학은 현실의 반영 & 민중의 기대
by 사립탐정 진 앤 송 Dec 19. 2025
내가 <탐정>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학교 도서실에서 읽었던 <명탐정 교실>이라는 책에서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적(?)이었으나 탐정의 복장, 갖춰야 할 장비, 도구 등을 그림까지 첨부하여 세세히 설명해 주었으며 여러 가지 사건 예화들을 통해 어떻게 추리를 하는지, 용의자의 진술에서 허점을 찾아내고 범죄현장에서 단서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너무도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어 어린 마음에도 <탐정>이라는 것이 가슴에 확 와닿게 되었다.
그때부터 추리와 탐정에 대한 갈증은 시작되었고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모리스 르블랑, 에드가 앨런 포우를 비롯한 저명한 추리 작가들의 작품들을 두루 섭렵하며 셜록 홈스, 에르퀼 포와로, 슈만 바베크, 아르센 뤼팽, 오귀스트 뒤팽 등 절륜한 명탐정들을 동경하며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왔는데 문득 <왜 이런 명탐정들은 다들 외국 사람들일까?>하는 의문점에 고등학생 무렵부터 국내 추리문학과 우리나라 탐정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국내에도 김성종 작가, 이수광 작가를 비롯하여 유수한 추리작가들이 있건만 해방 이후 70년이 지났음에도 추리문학의 저변은 매우 피폐한 것이 항상 궁금하였는데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원리로 볼 때 <탐정이라는 직업이 있어야 추리문학이 발전한다>는 것이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에는 <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깊이 동경해 왔던 <탐정>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이런 엄청난 팩트폭행에 한숨을 내쉬며 추리문학에도 취미를 잃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생업(?)에 열중하던 중 다시 내 마음을 들끓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2015년에 개봉한 권상우, 성동일 주연의 영화 <탐정 - 더 비기닝>이었다.
추리 마니아와 베테랑 형사의 콤비로 교차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나아가 두 사람이 손잡고 <사설탐정사무소>를 설립한다는 스토리인데 내 시선을 끈 것은 마지막에 둘이 만든 탐정사무소 홈페이지 왼쪽 상단에 찍혀 있는 <대한민국 민간조사원 협회인증>이라는 문구였다.
(왼쪽 상단 사각형 안에 <대한민국 민간조사원 협회 자격인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처음 보는 용어인 <민간조사원>은 단박에 내 시선을 끌었고 세월이 지나 이제는 나 자신이 사립탐정의 대열에 함께 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하늘의 뜻이라면 그러할 터. 여러 민간조사협회의 대표들을 비롯하여 많은 뛰어난 탐정들이 물경 20년 가까운 세월을 <탐정>의 합법화와 공인화를 위해 애써 오고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동안 소설과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던 탐정이 이제는 <공인 탐정>으로 우리 사회에 일익을 담당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하고 외제 명탐정들의 활약에 설레었던 내가 이제는 <대한민국 공인 탐정>의 일원으로 우뚝 설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그저 나날이 벅차고 기대가 되지만 선열들의 노고와 헌신에 그저 얹혀갈 수만은 없을 터 짧은 생각과 좁은 식견이지만 큰 탑에 기왓장 하나만큼의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툰 몇 자를 적어 올리려 한다.
다만 소제목이 그러하듯 탐정에 대한 연구를 하랬더니 뜬금없이 문학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으실 터이나 문학은 현실 사회상과 떼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에 등장하거나 유행하는 문학은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드시 반영하고 있으며 문학을 통하여 현실을 엿보고 또한 당대 민중들의 기대와 희망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살아보지 않았어도, 산업화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어도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해당 시대에 쓰인 문학 작품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직접 무언가를 겪어보거나 경험해 보지 않고도 문학을 통하여 대리경험을 할 수 있고, 작가의 시선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매우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비록 현대 사회에 이르러 <탐정>은 사라지고 음지에서 합법과 불법을 교묘히 오가는 <흥신소>와 <심부름센터>가 활개 치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 속에 어려운 사건을 속시원히 해결하고 억울한 사람의 무고함을 밝혀 정의를 구현하는 탐정에 대한 갈망과 기대는 항상 있어 왔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탐정은 단연 조선 영조 임금 대에 활약한 <암행어사 박문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암행어사라 함은 특정한 지역을 비밀리에 탐문하고 조사하여 탐관오리들을 벌하고 백성들을 평온케 하는 것인데 이미 이것만으로도 <공인 탐정>의 업무와 유사할뿐더러 그에 덧붙여 암행어사 박문수의 경우에는 각종 사건과 사고 등의 내막과 진상을 파헤치고 억울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 주는 것에 매우 뛰어나 당대 백성들의 열광적인 인기와 환호를 받았다.
또한 효종 임금 대에 철산부사로 활약하며 <장화ㆍ홍련 살인사건>을 해결한 전동흘, 정조 임금 대에 곡산부사로 있으면서 수많은 미제 사건들을 해결한 정약용 및 그와 동시대에 콤비로 활약한 포도청 군관 이종원과 육중창 등도 오늘날에 와서는 셜록 홈스와 투캅스에 비길 만한 명탐정으로 재조명받고 있으니 참으로 추리와 탐정에 대한 인기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국민들의 정서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들은 엄밀히 따지면 모두 국가에 소속된 공무원 내지 경찰 수사관에 해당한다는 것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일반적인 탐정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든 1920년부터였다.
저자 불명이나 1920년에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탐정소설 <박쥐우산>에 보면 당시의 탐정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사를 하였는지 엿볼 수 있는데 놀랍게도 현재 탐정들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사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탐정>을 <정탐>이라 표기함)
(전략)
변정탐은 공책과 연필을 가져 기록하고 오정탐은 시신의 상처를 검사하니 턱 밑 호흡기관이 직경 두치 가량은 찢어지고 가슴 명문 이상은 의복이 상하며 수삼 척을 낭자하였는데 선지피가 솟아 보기에 끔찍끔찍하다.
벽에 걸린 의복자락을 찬찬히 살펴보니 내 천(川) 자 모양으로 즉즉 내리 그은 피자취가 있으니 묻지 아니하여도 행흉(사람을 죽이는 흉악한 짓을 함)하던 칼 쓴 흔적인데 넓이가 칠 척 오푼은 넉넉한즉 흉수 가진 칼이 정녕히 맛빼 깊이도 같다.
시신의 입은 의복은 여러 겹이 아니요 다만 침의만 입어 칼 들어가기가 용이할 만치 되었고 이불이 버석적 발치에 몰려있는 것은 범인이 행흉하느라고 벗겨놓은 듯도 하고 피해자가 범인과 친분이 있어 맞노라고 자기가 벗어 물리친 듯도 하며 손톱 사이에 검은 쥐털 같은 것이 약간 끼여 있는 것을 추측하면 범인이 석피로 만든 의복이나 장갑을 꼈는데 죽기에 이르러 대항하노라고 쥐어뜯은 것 같다.
앞에 궐련(담배) 담은 칠함을 내여 놓고 재떨이 위에 빨던 궐련이 마주 놓인 것을 보니 범인과 서로 담화하며 궐련을 먹은 듯하고 입의 수건을 척 넣은 것을 보니 우리 사이에 네가 이럴 수가 있냐고 함성을 지를까 하여 방비함 같다.
허리띠에 달린 주머니를 칼로 자르고 끈만 남아 있을 때는 응당 그 주머니에 값진 보배가 들었거나 무슨 관계되는 비밀서류가 들어 있어 그 주머니를 목적하고 행흉한 것 같다. (후략)
- 1920년 작 탐정소설 <박쥐우산> 中
<박쥐우산>을 시작으로 탐정소설의 붐이 일어나 외국의 탐정소설들이 물밀듯이 번역 내지 번안되어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1937년에 공식적인 한국 최초 추리작가인 김내성 선생에 의해 최초의 한국인 명탐정 <유불란>이 등장해 추리와 사건 해결로 당대 사람들의 인기와 환호를 모았는데 특히 1939년 작 탐정소설 <마인>에서 유불란 탐정이 연쇄살인마를 추적하기 위한 주변인 조사를 할 때 놀랍게도 미국의 탐정조직에 의뢰하여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국제적 공조 수사>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전략)
얼마 동안 소파에 누워서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던 유불란은 벌떡 몸을 일으켜 테이블로 가서 펜을 들었다.
로스엔젤레스 XX스트리트 XX번지 존 피터
샌프란시스코 해안통 357번지의 윌리엄 앤더슨과 경성 혜성전문학교 교장 황세민의 관계를 상세히 보고하라.
경성 코리아, 유불란
유 탐정이 전보를 친 존 피터로 말하면 로스엔젤레스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한편 사립 탐정으로서 이름이 높은 중년 신사다.
(중략)
두말할 것 없이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사립 탐정 존 피터로부터 온 전보일 것이다. 과연 전보는 존 피터로부터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윌리엄 앤더슨과 황 교장에 관한 전보인데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간단히 적혀 있었다.
윌리엄 앤더슨은 당시 명망 있는 목사.
20년 전까지 남중국해에서 해적 생활을 계속하던 황(세민).
상세한 것은 후보로.
피터
(후략)
- 1939년 작 탐정소설 <마인> 中
<박쥐우산>과 <마인> 두 작품에서 보듯이 탐정의 현장에서의 면밀한 정황 조사와 검시, 독자적인 탐문에 한계가 있을 경우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은 현대의 탐정에게도 반드시 적용되는 기법이라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과거든 현재든 민중들이 탐정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며 일신의 예리함과 면밀함과 더불어 공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사건을 처리하는 그 모습이 민중들이 생각하던 가장 이상적인 탐정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 2부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