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흥신소, 그리고 탐정 (2)
퇴보한 현 세태와 공인 탐정의 그늘
by 사립탐정 진 앤 송 Dec 23. 2025
앞전에 언급된 그러한 작품을 써낸 김내성 작가는 민간조사학에 전공을 한 자가 아닐뿐더러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모습이다. 소설 <마인>이 1939년에 집필되었으니 현대 기준으로 근 90년 가까운 오래된 작품임에도 그 추리와 조사 기법을 비롯하여 국제적 공조수사까지 해내는 모습은 현대의 우수한 탐정 및 탐정회사와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활약이다.
김내성 작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 탐정의 모습을 미리 본 것이 아닌 이상에는 작가 1인의 상상력만으로 쓸 수는 없을 터 너무도 당연하게도 그러한 모습이 당대 탐정의 모습이며 또한 민중들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명탐정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며 민중의 기대를 표현한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탐정의 모습은 어떠한가?
물론 아직 공인 탐정법이 통과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공인 탐정>은 존재하지 않는 뼈아픈 현실이지만 대대로 우리나라가 관군이 허술하면 의병들이 나서고 공권력이 부실하면 민간무력이 일어났듯이 법제화된 공인 탐정은 없어도 흥신소 내지 심부름센터라는 이름으로 탐정 노릇을 하는 개인 혹은 업체들은 항상 존재하여 왔다.
해방 이후 최초의 사설탐정은 무려 1946년에 설립된 독립지사 양근환의 <혁신탐정사>라고 할 수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사건을 해결하고 추리를 하는 탐정이 아닌 친일파 처단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대에 가까웠던 터라 설립 당해인 1946년과 이후 1948년 두 차례에 걸쳐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고 이때부터 사설탐정을 공인하지 않는 방침이 정해져 이후 80여 년 가까운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흥신소라는 이름으로 음지에서 의뢰를 받아 해결을 해주는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심부름센터라는 이름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현재 흥신소 및 심부름센터가 전국에 2천여 업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흥신소의 모습은 과거 조선시대의 암행어사 박문수 내지 일제강점기의 유불란 탐정의 모습에 비해 어떠한 형태를 보이고 있을까?
이들의 주 업무는 전국 모든 흥신소가 거의 동일한데 바로 <사람 찾기>, <기업 문제>, <불륜 증거수집>, <신변 보호>, <경호 업무>, <각종 대행>에 관한 일이다. 그 어떤 흥신소와 심부름센터를 찾아가거나 홈페이지를 보거나 어플을 보거나 명함 내지 광고지를 보더라도 이러한 업무내용은 반드시 있으며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면 <가정문제ㆍ부부문제ㆍ배우자 외도 상담> 및 <소재파악ㆍ사실조사> 정도로 명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해결해 주지 않는 개인적인 일을 <의뢰>에 의하여 대신 떠맡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예로부터 가장 각광받고 있는 전통적인 업무가 <배우자 불륜 증거 수집>이다.
간통죄가 폐지되어 더 이상 배우자의 외도를 법적으로 형사처벌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와 이혼하기 위해 민사소송으로 가더라도 재산분할, 위자료 산정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려면 상대방의 불륜에 대한 증거수집이 절실히 필요한데 이것을 경찰이 대신해줄 리가 만무하고 본인이 직접 하려 해도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육아와 가사 등으로 틈이 나지 않고 증거수집과 추적 등이 아마추어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 필연적으로 전문적인 업자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마당에 흥신소가 <기업 조사>, <신변 보호ㆍ경호>, <각종 민원대행> 등의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있더라도 그 실무적인 내막을 들여다보면 지역 흥신소 수준으로 기업 조사가 될 리 만무하고 신변 보호나 경호가 필요하면 아예 경호업체에 문의할 것이며, 각종 민원대행을 하려면 행정사 사무소를 찾아가지 흥신소에 맡길 리가 없는 터라 결국 대부분의 흥신소 내지 사설탐정을 자처하는 이들은 <배우자 외도 추적>, <불륜 증거수집> 업무가 사건 수임 및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수백 년 전 조선시대에도 민중들은 예리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암행어사에게 열광하였고 근 백여 년 전 일제시기에도 민중들은 정교한 추리와 현장조사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에게 환호하였건만 그러한 암행어사와 탐정이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서는 불륜 증거를 수집하고 외도를 추적하는 업무로 도리어 퇴보하게 된 기가 막힌 현실이 작금 공인 탐정을 꿈꾸는 이들이 맞닥뜨린 상황이다.
그렇게 맡겨진 의뢰라도 성실하게 잘 수행하면 다행인데 불륜 조사의 경우 의뢰인에게 착수금을 받고 상대 배우자에게 알려 그쪽에서도 사례금을 받고 외도 사실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실종된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접근해 착수금만 받고 잠적한다든지, 조사 과정에서 알아낸 정보로 의뢰인과 상대방을 둘 다 협박해 양쪽에서 금품을 뜯어낸다든지 하는 식의 신의를 저버린 범죄 행위가 빈발하여 흥신소를 비롯한 탐정의 신뢰도가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또한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이 정도가 되면 가히 퇴보한 정도가 아니라 타락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래 탐정이라 함은 사전적 의미로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내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며 탐정의 참 이념은 <추리와 탐문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을 드러내어 억울한 사람의 무고함을 밝히고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록 현실이 여의치 않다 해도 이러한 이념만큼은 반드시 모든 탐정들이 마음에 새기고 의뢰를 받아 활동함에 있어 그것을 구현하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
다시 거듭 언급하지만 경찰의 본분이 <정의를 지키는 것>이라면 탐정의 본분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써 특히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자력으로 무고함을 밝힐 수 없는 이들의 사정을 헤아려 추리와 열정으로 그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고 공공선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탐정의 최종 목표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근본적인 이념, 마인드부터 갖추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탐정이 법적으로 통과되고 공인 탐정이 된다 한들 그 내막은 흥신소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인 탐정법이 천운으로 무난히 통과되어 그 시행 전에 기존의 흥신소와 심부름센터들을 대대적으로 집중 단속한다 해도 그들이 없어진 자리에 이념과 정의감을 갖추지 못한 탐정들이 또다시 그 빈자리를 메꾸어 흥신소가 될 뿐이다.
물론 공인 탐정법이 통과되지 않은 현재에도 음지에서 활약하는 탐정들 중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의뢰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국법을 철저히 준수하여 정의롭고 합법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분들도 많이 있으며 그러한 분들이 있기에 공인 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신뢰와 힘이 실려 많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아니, 그런 분들이 다수이고 불법을 저지르는 흥신소가 소수일 것이나 한 방울의 잉크로도 한 잔의 물이 검게 물들듯이 일부의 불법과 비리가 모두에게 오명을 씌우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우려스러운 것은 공인 탐정법이 통과되어 공인 탐정이 등장하게 될 경우 그동안은 법률상 불법이라 대기업들이 손대지 못한 탐정업에도 재벌 그룹들이 진출하여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독점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각 지역의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동네 빵집과 슈퍼마켓도 체인점이 아니면 무사하지 못하는 것이 현 세태인데 공인 탐정이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대기업이 작정하고 자금력을 동원해 독점하려 들면 그동안 아무리 건실하게 업무를 해 온 흥신소나 탐정들도 순식간에 영세업체가 되기 십상이고 탐정들이 자본 논리에 휘말리게 되면 소외받는 사람들의 정의 구현을 위하는 탐정의 본분을 지켜 나가는데 애로사항이 꽃필 가능성이 농후하다. 쉽게 말해 대기업이나 돈을 많이 주는 스폰서를 위해서만 탐정이 움직이고 정말 조력이 필요한 서민들은 탐정 의뢰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전 흥신소와 심부름센터의 폐단 이상으로 20년에 걸친 공인 탐정 합법화의 열정과 노력을 짓밟는 서글픈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공인 탐정의 합법화 후 불법 흥신소의 폐단과 거대 자본의 탐정업 잠식을 최소화하며 동시에 사건을 해결하여 치안 질서 유지에 기여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탐정의 이념에 적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 3부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