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될 사람인가 대체불가한 사람일까?
GPT에게 내 사주를 물어본 적이 있다.
꽤 집요하게, 과거와 미래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답변은 논리적이었고, 구조화되어 있었으며,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굳이 사주팔자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듣기 좋은 이야기도 있고, 미래에 대한 조언도 꽤 구체적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사주를 볼 줄 아는 회사 동료에게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을 주며 상담했다.
놀랍게도 답은 GPT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무가 많고, 불이 적고 등등
비슷한 해석, 유사한 흐름, 같은 방향의 조언.
그런데 GPT와 같은 해석이었지만 부족했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왜였을까.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분석한다.
수천만 건의 텍스트를 학습해 평균적 확률값으로 가장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인간은 표정을 읽고, 말의 속도를 듣고,
질문의 맥락을 감정 단위로 해석한다.
GPT는 나의 질문을 이해했다.
동료는 나의 상태를 이해했다.
그 차이는 작지만 결정적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대체’를 겪어왔다
역사를 보면 직업은 끊임없이 사라져왔다.
마차가 사라지며 마부는 줄어들었고
전화 교환원이 자동 교환 시스템으로 대체되었으며
필름 인화 기술이 발전하며 암실 사진 현상가는 희소 직군이 되었고
산업화는 수많은 수작업 노동을 기계로 바꾸어놓았다
기술은 언제나 반복과 효율을 먼저 대체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인간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늘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사라진 직업 위에, 더 고도화된 직업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AI는 다를까?
AI는 몇 백 페이지의 논문을 단 몇 초만에 요약한다.
복잡한 통계 자료를 구조화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번역하고, 분석한다.
내가 며칠을 들여 읽어야 할 자료를
AI는 몇 초 안에 정리해준다.
정보 처리 속도와 범위에서 인간은 이미 경쟁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남아야할까?
인간이 대체되지 않는 영역
나는 그 답을 ‘사주 풀이’에서 느꼈다.
AI는 확률을 말하고,
인간은 책임을 진다.
AI는 문장을 만들고,
인간은 관계를 만든다.
AI는 평균을 계산하고,
인간은 맥락을 읽는다.
기술은 도구다.
도구는 방향을 정하지 않는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AI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말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다 끝났고,
콘텐츠 제작자들은 굶어 죽을 것이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항상 앞서 나간 사람들은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술을 먼저 이해하고, 먼저 활용한 사람들이
결국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갔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인간의 사고를 증폭시키는 장치에 가깝다.
문제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AI와 대화한다
나는 글을 쓰거나 기획할 때 AI에게 구조를 묻는다.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내 의견에 반박을 요구하고,
논리의 빈틈을 점검하게 한다.
플레이리스트 채널에서는
내가 만들고 싶은 분위기의 음악을 설계하고,
시각 이미지와 연결해 하나의 콘텐츠로 완성한다.
AI가 작성해주는 내용은 초안일 뿐, 큐레이팅과 에디팅은 내가 한다.
효율은 AI에게 맡기고, 나는 감성을 집어넣어야한다.
그 한 끗에서 결과물이 달라진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
나는 앞서나가고 싶다.
기술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이해하고 선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정보를 걸러내고, 그 위에 나만의 감각을 더해
콘텐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AI는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고, 책임을 지고,
선택을 하고, 방향을 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일 것이다.
AI는 많은 것을 대신해준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쓸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나는 기술에 밀려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이용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