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비 Mar 28. 2024

점프가 형편없는 개구리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개떡같이 점프하는 개구리'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됐다.

개구리들이 점프를 잘하는 것은 그들의 생태계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개떡같이 점프하는 개구리는 점프만 했다 하면 머리 박치기를 하거나,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착지도 못하고 볼품없이 바닥에 퉁퉁 튕겨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개구리가 포식자가 득실득실한 정글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어 독보다 몇 배는 강력한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란다. 수천 킬로 떨어진 아마존에서 너무나 어설픈 점프 실력에도 살아남는 요 호박두꺼비에게서 나는 묘한 경외심과 동질감을 느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미술 관련 상은 항상 받았기에 어느새 수상은 당연한 일이었고, 미술 시간마다 아이들이 내 자리에 몰려와 감탄하는 게 익숙했다.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으로 진학했고, 졸업했고 취업했다. 그러나 나는 10년 동안 단 한 장의 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내가 잘해서 좋아하던 것이 사실은 그리 대애단한 재능이 아니었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경쟁하다 끝내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에 척 붙던 친구, 탱자탱자 놀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교수님을 즐겁게 하던 동기, 나보다 능숙하게 디자인을 잘하던 후배, 나보다 먼저 졸업해 좋은 기업에 들어가 착실히 경력을 쌓던 동기. 점프를 잘하는 게 당연한 개구리들 사이에서 난 어느새 혼자만 엉망인 호박개구리라 느꼈나 보다. 그래서 하얀 도화지 앞에선 숭덩숭덩 발이 빠지는 늪처럼 실수할까 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나의 애매한 재능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며 까마득한 내리막길을 걸어내려 갈 때였다. 러시아 기차여행을 떠났다. 기차여행은 생각보다 무료했고, 그 시간을 보낼 무언가 필요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작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냈다. 그렇게 내 친구 크로키를 시작으로 앞사람, 뒷사람, 옆 칸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동양인 여자애가 인물화를 공짜로 그려준단 소문이 기차 전체에 퍼지게 되었고, 차장님이 와 자기를 그려달란 부탁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기차 안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인물화를 그려주는 대가로 여러 가지 먹을 것들도 얻고, 러시아 여행에 대한 꿀팁도 얻었다.


대단한 그림이 아닌 몇 분만에 쓱쓱 그려낸 그림에도 기뻐하던 사람들
여러가지 먹을 것과 색연필을 깎아주던 투박하지만 친절한 손
그렇게 그려낸 여러 장의 크로키
씻지 못해 얼굴은 번들거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

 

그렇게 난 이 기차여행에서 더 이상 '나는 왜 점프를 못하는 호박개구리일까'하는 생각을 접게 됐다. 완벽하지 않던 어지러운 선들이 가득한 투박한 크로키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뿌듯했다.



 스스로 호박개구리라 느끼던 내가 지금은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점프를 못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에 집중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미술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한 아이가 "선생님, 저는 재능이 없나 봐요. 이 정도로 배웠으면 더 잘해야 하는데..."라며 잔뜩 풀이 죽은 채 말했다. 그 학생에게서 한창 열을 올리며 1등을 못하는 것에 속상해 몰래 화실 화장실에서 훌쩍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그림 그릴 때 못 그릴까 봐 무섭다. 근데 그냥 하는 거다. 그래야 실력이 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화가 반 고흐가 그의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엔 이런 말이 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 다지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끝없는 자기 의심 속에서 계속해서 한가지에 몰입한다는 건 사실 저엉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점프를 못하는 호박개구리가 아마존에서 몇천 년의 진화를 거치며 살아남았단 과학적 사실이, 무언가를 잘, 계속 해내기에 부족한 인간이라며 비하하던 나에겐 더 이상 과학적 사실이 아닌 따뜻한 위로로 들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