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면 다냐?

만물 자유설

by 이동민
대한민국헌법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제3항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4항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은 우리 헌법에 없다. 심지어 '표현'이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법을 전공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조차 '표현의 자유'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표현expression은 상당히 넓은 개념이다. 표현이란 내심의 의사, 양심, 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그 방법도 음성 언어에 의한 표현, 문자 언어에 의한 표현, 제작물에 의한 표현, 몸동작이나 표정에 의한 표현 등으로 다양하다. 발언의 자유freedom of speech는 표현의 자유보다 좁은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발언의 자유를 따로 규정하거나 개념화하지 않지만 발언의 자유를 특히 더 보장하는 문화도 있다. 음성 언어는 다른 표현 방법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지속성이나 파급력이 낮기 때문이다(회사에 욕하고 싶은 상사에게 욕을 하는 것과 그 상사에 대한 욕을 적은 문서를 게시하는 걸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언론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보다 훨씬 좁은 개념이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하위 개념은 아니다. 만약 언론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하위 개념이라면 굳이 우리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없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규정을 두고 그것 보다 근원적인 자유인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도출된다'라는 논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 하위 개념인 언론의 자유가 당연히 보장된다'라는 형태가 훨씬 깔끔하다. 그렇게 보장하지 않은 이유는(물론 나는 표현의 자유 또한 헌법에 명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만이 갖는 특별한 지표 때문이다.


첫째, 주체면에서 보자면 직업적 언론인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기자'라는 타이틀이나 '편집자'라는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업무로 하는 사람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업무는 정기적일 것을 요하지 않고, 반드시 대가(급료나 광고료)를 받고 하는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비정기적으로라도 반복하여 실행하고 그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의한 것이어야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우연한 정국 해설자'가 있는데, 예컨대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우연히 화재 현장을 발견하고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위를 언론 행위라 하기는 어렵다.


둘째, 대상면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것이어야 한다. 특정한 소수, 또는 다수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집단, 불특정 하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아주 제한된 인원만을 대상으로 하였다면 그것을 언론행위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친구에게 아무리 훌륭한 정보를 직업적으로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언론인이라 칭할 수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언론은 주로 문자 언어나 동영상 등 기록 및 보관이 가능한 형태로 다수에게 전달된다. 음성 언어는 전파를 통해 다수에게 전달될 때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내용면에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신문 기사를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신문 기사(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말한다)야 말로 육하원칙에 따라 논리적으로 잘 쓰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이기 때문이다. 르포르타주Reportage(줄여서 르포라고도 한다) 형태의 기사에 기자의 현장 감정이 담기기도 하지만 기자가 느낀 감정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 현장에서 오감으로 받아들인 정보가 주를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불가지의 영역을 다룬 포교를 위한 글이나 자신의 감정이 주된 내용을 이루는 감상문을 게재하는 행위는 언론 행위로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사실을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사실이어야 한다. 알 권리는 단순한 정보에 대한 접근, 수집, 처리를 위한 권리가 아니다. 알 권리에서 보장하는 정보는 양심의 형성에 관여하는 정보여야 한다. 마트 세일을 알리는 전단지는 아무리 '불특정 다수를 위한(그것이 전단지를 만드는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한) 정보 전달(마트 세일 사실)'을 위한 글이라지만 언론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이 독자에게 아무리 유용하다고 하더라도 소비를 촉진하거나 재화 및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하게 함이 목적이라면 언론의 자유 보장 영역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연예나 문화 섹션의 기사도 '파경설' 따위를 담은 것은 기사라고 보기 힘들고 스포츠, 문화, 예술작품에 대한 평론을 더하여 그 글(또는 음성이나 영상)이 국민의 양심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언론의 기능이 의제 설정agenda setting 기능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같지 않다.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그렇지 않다. 언론의 자유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허용'함을 원칙으로 한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언론사주의 자유일 뿐이다. (젊은 사람들, 그리고 일부 기자들이 언론의 자유를 이런 식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안타깝다) 언론사주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면 재벌, 기업, 기득권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기관지(機關紙)가 된다.


언론은 권력 감시, 여론 형성, 의제 설정 등 공적인 임무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언론은 굉장히 사적인 이윤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사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이 공적인 기능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순진하다.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른 것도 아니었다. 언론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공짜인데, 그러면 그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의 생업은 누가 책임지고 있다는 말인가? 기자들도 월급을 받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 서비스를 소비하는 우리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저열한 정부의 탄생이라는 실로 무서운 영수증으로 돌아왔다. 기자들이 직업윤리를 외면한 결과였고, 우리가 언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결과였다.


내가 인터넷 신문을 만들기로 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대형 언론사처럼 하루에 수십 개의 기사를 쓰고 데스킹까지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인터넷 신문의 유지 최소 조건인 일주일에 하나의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것도 참으로 괴롭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그나마 명예훼손 전문가가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명예를 덜 훼손하고, 설령 훼손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방어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목표는 주제넘게 다른 사람을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충분하고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충분하고 공정한 정보의 제공이 토론 민주주의와 숙의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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