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총은 없는
오늘 보증금 반환 사건의 항소심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세입자를 대리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세입자는 전세 보증금이 전재산이어서 보증금을 떼이면 한 푼도 없이 길거리로 쫓겨날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연세도 많으시니, 돈도 받지 않고 사건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좀 이상합니다. 갖은 핑계로 보증금을 못 주겠다고 하더니 항소심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했네요. 점입가경인 점은 변호사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항소기간을 지나서 항소심이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인데 (얼마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하게 선임되어서 집주인 입장에서 변론을 이어가더라고요. 재판부에서 '항소심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난 것 같은데 어떠냐'하는 질문을 대리인에게 했습니다. 대리인은 '저는 준비서면에 충실히 입장을 밝혔으니 본인이 이야기할 것'이라면서 피고에게 마이크를 줬습니다.
저도 질 가능성이 99.9%인 사건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뭐 스스로 패소 전문 변호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패소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진행하는 사건은 '그 사람이 정말 안타까워서 비용을 받지 않고 도와준 것'이지, 기간 도과 등의 부적법이 분명한 사건에 돈을 받고 진행한 적은 없습니다.
법리 다툼이 아니라 그냥 '이건 안 되는 건데' 사건을 진행하는 변호사가 많으면 좋은 걸까요? 덕분에 손쉽게 날로 먹는 사건이 하나 늘어나니까 좋은 걸까요? 아니면 법조계에 대한 국민 전체의 불만이 늘어나 결국 공멸의 길로 접어드는 걸까요?
직장인 논쟁이라는 재미있는 유형 검사(?)가 있어서 우리 사무실 직원들과 해봤습니다. 저는 사내 평화 수호자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홍과 자꾸 싸워서 그렇지 사실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놀라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직원들이 '변호사님이랑 딱 맞아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평화를 자꾸 깨는 직원이 있습니다. 실력은 괜찮은데(사실 우리 사무실 직원들 실력은 다 괜찮습니다), 의뢰인과 자주 다툽니다. 저는 '선 넘는' 행동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편인데 의뢰인들은 굳이 참을 필요가 없으니 불꽃이 튀는 것이겠지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12년 차에 접어든 자영업자도 직원 관리는 참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