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by 이동민
모두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의 결과는 당신이 그것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 Hannah Arendt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적절한 행동 양식을 찾는다. 반대로 동물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천적으로 심어진 패턴을 '최선을 다해' 실행한다. '가려움'이라는 자극에 '긁는' 반응은 동물 수준에서 당연하다. 가려움은 보통 벼룩, 모기, 먼지처럼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는 외부 자극이 피부와 접촉했을 때 느끼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런 외부의 자극은 긁는 행위로 떼어 내는 개체가 떼어 내지 않는 개체보다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 패턴이 발달한 것이다. 이런 패턴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극과 반응이 연결되었을 뿐이다. 강아지는 귀가 간지러우면 피가 날 때까지 긁는다. 그래서 목카라라는 차단요소가 없다면 생존에 유리한 행위가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그것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아님을 안다면 그 행위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인간에게는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과 행동 양식을 선택하고 그런 모습의 행동으로 나아갔을 때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존재한다. 그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기대를 자기 효능감이라고 한다. 물론 인간에 따라 자기 효능감의 정도는 다르고, 한 개체의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영역에 따라 자기 효능감의 정도도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일정한 행동을 취하였고, 기대한 목표가 달성되었다면 자기 효능감은 상승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했더니 내가 목표한 만큼 성적이 올랐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공부를 그만두는 학생은 없다

'국립공공의료보건대학'은 의료 취약 지역의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이 대학은 만들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성격을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역대 정부(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 움직임이 있었다)에서 추진하고자 했던 '국립공공의료보건대학'의 특징은, 1) 모든 학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면제, 2) 면허 부여 후 일정기간(예컨대 10년) 의료 낙후 지역에서 의무 복무, 3) 의무 복무 불이행 시 의사 면허 취소 등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최초로 이런 논의가 나왔을 때(당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발의) 대한의사협회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우려스럽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설치될 가능성이 낮아서인지 집단 파업과 같은 과격한 반발은 발생하지 않았다.


국립공공의료보건대학의 설치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문재인 정부 시기였다. 당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역의 필수 의료 인력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런 필요성이 지역 균형발전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기조와 어우러져 대학(또는 대학원) 설치를 위한 입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 관계자 대부분이 반발했고, 많은 현직 의사들이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집단 파업에 동참했다. 의대생들은 의사국가고시까지 거부하며 국립공공의료보건대학의 설치 철회를 요구했다. 물론 정확히는 대학의 설치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의대 정원이 400명(내지 500명)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만 말이다. 결국 코로나 시기에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정책을 추진할 수 없었던 지난 정부는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 하기로 하고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달랬다. 그리고 국립공공의료보건대학의 설치를 위한 법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현 정부는 1년에 최소 1000명, 일부 보도에 따르면 최대 3000명까지 의대 정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58명임을 감안한다면 단순 계산으로 두 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의대 정원의 확대는 현재까지 '공공의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은 '의대 증원과 관련하여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행위로 목적하는 바를 달성한 경험이 존재할 때, 같은 행위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더 효과적인 그것을 쓰지 않는 이상, 효과를 본 경험이 있는 행동 양식을 취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의사들에게는 지난번보다 더 큰 퀘스트가 주어졌다. 그렇다면 최소한 지난번보다는 더 강한 행동으로 정부의 정책을 저지해야 한다. 집단행동으로 400명 증원을 막아낸 경험이 있다면, 논리를 더 잘 가다듬고 국민들을 더 잘 설득해서 더더욱 집단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그때도 막지 못했다면 모를까, 그땐 막아냈는데 지금은 못 막겠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정부에서는 집단 파업을 해 본 적도 없지 않은가? 해 본 적도 없는데 지쳤다는 말은 비겁하다.


스스로 '전문가' 수준에 남겠다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참된 지식인의 타이틀을 놓고 싶지 않아서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곱게 보일 수 없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상이다. 물론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리고 특정한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것이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위태롭게 한다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때의 파업은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은 '진심'이 아니다. '나는 잘 사는 사람이니까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 그러니까 이번 증원은 찬성한다'라고 말하든 '나는 압수수색이 두려우니까 지금 증원은 입 닫겠다'라고 말하든 비난하지 않는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비난을 듣진 않는다. 나도 압수수색이 두렵긴 마찬가지니까. 그렇지만 갖은 핑계를 대면서, 남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지키고 싶은 위신'이 있다면, 그게 거짓말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모두에게 꾸준히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의 결과는 모두가 당신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는 아무도 당신을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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