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들의 몰상식하고도 비열한 수법, 이게 된다고요?
아니, 이게 된다고?
돈을 들이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게 가능하다고? 물론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목만 보고 들어오신 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내가 나에게 돈이 안 된다고 이야기한 하나의 소송 사례를 소개할 것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이고, 아직도 법적인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고, 건축에 들어간 상당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 건물은 유치권 행사 중입니다.
다들 지나가다가 저런 내용의 현수막을 한 번쯤은 보셨을 것이다. 유치권은 간단하게 말해서 '그 물건에 대해서 생긴 비용을 변제받지 못했을 때 물건 자체를 주지 않을 권리'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나면서 건물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을 발견했다면 건물과 관련된 일을 한 사람이 그 보수를 받지 못하였고, 보수를 받을 때까지 건물을 건축주에게 주지 않는 현장을 본 것이다. 하지만 유치권이라는 녀석은 인정받기도 까다롭고, 그 행사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유치권 행사를 꺼려하는 사람이 많다. 생각해보라. 건물을 지은 사람이 건축물에 건축주가 못 들어오게 막고, 문을 잠그고, 심지어 용역까지 동원하는 상황을. 우리 같은 평화주의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다.
준공 대출만 나면 건축비용 다 주겠네.
건설회사의 임원을 잘 아는 건축주는 이런 말로 건설회사에게 10층 모텔을 지어달라고 했다. 총 건축비용은 30억. 설계비, 감리비 등 기타 잡다한 비용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건축회사에게 주는 돈만 30억이 되는 공사였다. 건설회사는 중대형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건축비용을 못 받을 경우 상당한 리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평소 건축주와의 인연도 있었고, 건축주가 지역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아온 사람이었기에 건축비용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건축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모텔 공사가 80% 정도 끝났을 무렵 건축주는 건설회사에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한다.
이 건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으니 준공은 아들 이름으로 내주게.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더러 이런 요청을 하는 건축주가 있었기 때문에 준공을 눈앞에 둔 시점에 건축회사는 준공을 건축주의 아들 이름으로 내줬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준공이 아들 이름으로 났으니 모텔은 아들 소유이다. 건설회사는 건축 계약을 아버지와 했다. 법적으로 비용을 줘야 할 사람은 아버지고 모든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들이다. 건설회사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평소 친분'이라는 무기로 대항하는 원 건축주를 크게 압박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공사대금을 주셔야죠.
건설회사는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았고,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텼지만 결국 30억으로 시작된 자금 경화라는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했다. 변호사 선임료도 제대로 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회사는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당장 소송을 했고 제1심에서 우리는 금액에 있어서는 전부 승소를 했다. 하지만 모든 재산을 가진 아들의 책임은 제한적으로 인정되었다. 아직 항소심 진행 중이기 때문에 확실한 소송 전략을 여기서 밝힐 순 없지만 항소심이 마무리되면 이 건축주가 행한 만행이 왜 법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것인지 낱낱이 밝혀보고자 한다. 제목과는 달라서 미안하지만 돈 안 들이고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은 그리고 건물 짓는데 드는 비용을 노인이 다 떠안고 가려는 사람은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제목과 달라서 다시 한번 죄송하지만, 세상에 공짜로 건물을 짓는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