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으로 재판을 다녀왔습니다. 제 사건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의 상대방이 출석하지 않아 같은 시간 다른 재판이 먼저 진행되었습니다. 앞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원고가 이미 피고를 상대로 다른 소송에서 패소를 했음에도 비슷한 소송을 제기한 것 같았습니다. 원고 대리인의 주장을 듣고 있던 재판장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원고 대리인, 자꾸 같은 소송을 고의적으로 제기하면 소송 사기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송 사기란 법원을 속여 일정한 이득을 취하는 행동으로 기망의 대상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주로 판사이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가 되기 때문에 아주 무거운 죄로 평가받습니다.
피고인 X는 피해자 Y로부터 사업자금을 1억 8,000만 원 빌렸습니다. 피고인 X는 Y로부터 이 돈을 빌리면서 사업이 잘 될 것이니 이익금까지 더하여 총 5억 4,000만 원을 주겠다고 하면서 약정서를 작성하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록 X가 돈을 지급하지 않자 Y는 X를 상대로 약정금 5억 4,000만 원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X는 소송 과정에서 "약정금을 다 받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4억 원을 받고 소송을 취하해 달라."라면서 Y를 설득하였습니다. 이에 X와 Y는 "X가 분양 예정인 아파트가 준공되면 Y에게 4억 원을 지급하는 것을 약속하고, Y는 이 사건 소송을 취하한다."라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한 후, Y는 이를 첨부하여 소송을 취하하였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록 X가 돈을 갚지 않자 Y는 X의 사정을 알아본 바, 합의서에 작성한 분양기일은 사실과 달랐기 때문에 애초에 X는 Y에게 돈을 지급할 능력과 의사가 없었습니다. Y는 X를 사기로 고소하였습니다.
소송사기는 법원을 속여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음으로써 상대방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로서, 이를 쉽사리 유죄로 인정하게 되면 누구든지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을 하고 소송을 통하여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민사재판제도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3도7124 판결 참조).
이러한 위험성은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하여 소송절차를 원만하게 마무리하는 민사조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따라서 피고인이 그 범행을 인정한 경우 외에는 소송절차나 조정절차에서 행한 주장이 사실과 다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피고인이 그 주장이 명백히 거짓인 것을 인식하였거나 증거를 조작하려고 하였음이 인정되는 때와 같이 범죄가 성립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이를 유죄로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
소송당사자들은 조정절차를 통해 원만한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허위나 과장이 섞인 언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언행이 일반 거래관행과 신의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 항소심 법원은 합의서 적힌 변제일자가 아파트 분양일자와 일치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파트 분양이 이루어지지 않는 날짜에 약정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면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없음에도 상대방을 기망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억 4,000만 원에서 4억 원으로 감액하여 1억 4,000만 원의 이익을 얻은 셈이 되고, 그 금액에 해당하는 사기죄를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받기 위하여' 일부의 거짓말, 약간의 과장은 늘 있는 일이고, 이를 금지할 경우 소송을 통하여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지기 때문에 객관적인 증거를 조작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약간의 거짓말 정도로는 소송 사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