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발해와 고려
언어는 사고의 창이다. 우리는 현상 세계에 대한 인식을 언어의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물론 언어는 사회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발화자의 사상이나 가치관과 상관없는, 심지어 그에 반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압력은 권력자로부터 비 권력자에게 일방적으로 작용한다.
키이브, 키이우
요즘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키예프 공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키예프가 수도였던 키예프 공국은 몽골에게 멸망당한 후 타타르의 지배를 받게 된다. 키예프 공국 중 제후국 중 하나였던 모스크바 공국(후에 러시아로 발전한다)은 사람이 살기 힘든 기후와 낮은 생산량 덕분에 몽골의 주요 타깃이 되지 않았고 가장 먼저 타타르의 멍에를 종식했다. 반대로 곡창지대였던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은 그 후에도 폴란드-리투아니아, 나중에 힘을 키운 러시아에게 반복적으로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우크라이나어인 키이브(또는 키이우)가 아니라 키예프로 불리는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쉽게 침공하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페르시아도 아랍도 아닌 이란
같은 굴욕을 당하는 것은 비단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다. 페르시아라고 불리는 이란은 스스로를 페르시아라고 불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나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그리스 서쪽의 문명이 이란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리스 서쪽의 문명이 현재의 주류 문명이 되면서 이란의 역사는 '페르시아'의 역사가 되었지만, 1935년 팔레비 왕조에서 공식 국호를 '이란'이라고 천명함으로 인해서(국호를 바꾼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게 이란으로만 불러달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이제 아무도 이란을 페르시아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란이 페르시아였던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참고로 이란은 아랍도 아니다. 민족 자체가 다르다.
더 바보 같은 대한민국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다른 모든 나라가 '키예프'로 불러도 '키이브'로만 자신의 수도를 칭한다. 이란은 수천 년 동안 '페르시아'로 불렸지만 국제 사회에서 '이란'의 이름을 되찾았고, 이제 10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조영이 세운 고려를 '발해'라고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후 처음 국호를 '진'으로 하였다가 나중에는 스스로를 고려 국왕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국호는 고려임이 분명하다. 발해는 당나라가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면서 만들어진 호칭이다. 바다 이름 渤, 바다 海가 나라 이름으로 가당키나 한 것인지 생각해보자. 당나라는 당시 보하이만 근처를 다스리는 봉건 군주 정도로 우리 국왕을 낮잡아 보았다. 당시 신라도 대조영에게 대아찬의 작위를 수여했는데 그렇다면 대조영의 고려도 신라의 속국이라는 말인가? 다른 사람이 부여한 작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내 이름은 궁예가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의 일이다. 염색이 너무 하고 싶었던 나는 짧은 2주 방학 기간 동안 노란색으로 염색을 했는데, 방학은 2주였지만 6일만 쉬고 보충수업을 나가야 했다. 보충수업에 염색한 머리로 나갈 수 없던 시절이라 검은색으로 다시 염색을 할 바에 머리를 전부 밀기로 했다.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내 인생 최초의 삭발이었다. 당시 드라마 태조 왕건이 인기였던 시절이라, 수학 선생님이 나를 '궁예'라고 불렀다. 우리 반 모두 나를 궁예라고 불렀다. 힘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부르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란이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참았듯, 우크라이나가 키예프를 참았듯 나도 궁예를 참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불린다 한들 나는 나 스스로를 단 한 번도 궁예라고 부른 적이 없다. 역사서에 그렇게 남아 있는데 왜 혼자 고집이냐고? 말로만 중국을 경계하자고 하면서, 더 심한 말도 쉽게 하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중국이 짜 놓은 틀에 놀아나고 있는 게 누군데 그런 말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