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그게, 그러니까, 질문이 뭐냐면…….”
「빨리 말 안 해?」
“할게요! 이거, 진짜 게임인가요? 우리를 어떻게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 대체 여기는 어디예요? 어, 또 질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현재는 되는대로 내뱉었다. 괜찮은지, 아닌지 따질 정신 같은 건 없었다. 사실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이었지만 차마 내뱉지 못한 내용이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는 설명과 상관 없는 질문을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암묵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아, 거기까지.」
현재는 한울이 말을 자른 후에야 숨을 내쉬었다. 숨을 참았다는 자각조차 없었으나 뒤늦게 분위기를 눈치채며 딱딱하게 굳었다. 있는 대로 원망하는 수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나 차마 옆을 쳐다볼 수 없었다. 불안으로 죽을 것 같을 때 한울이 답했다. 의외로 평온한 어조였다.
「진짜 게임 맞고, 데려온 방법은 말해봤자 소용없고, 여기는 게임 속이자 현실이지. 유토피아는 초대장을 받은 이와 그가 선택한 동반자가 참여하는 게임이야. 누가 초대자고 동반자인지는 비밀. 기본적인 설명은 여기까지야. 세부적인 규칙은 게임 하면서 정해 가자고. 그럼 이제 첫 퀘스트를 내볼까?」
목소리가 설명을 마치자마자 방 전경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던 바닥에 물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바다를 이루었다. 당황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공포가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고개만 내밀었다.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급선무였다. 물은 상당히 차가웠다. 나아가 묘하게 물살이 거셌다. 중앙에서부터 파도가 치듯 물살이 밀려와 계속 구석으로 몰렸다. 덕분에 중심을 잡고 떠 있기가 매우 힘들었다. 몸이 계속 움직이니 알게 모르게 두려운 것도 있었다.
“이, 이게, 헉, 뭐야!”
“갑자기 왜 물이……!”
“사람, 사람 살려요! 나는 수영을 못 한단 말이에요!”
누군가 살려달라 외치자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수영을 못 한다는 여성은 말과 달리 제법 잘 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같았다. 있는 힘껏 몸부림치는 것과 다르게 떠 있는 모습은 안정적이었다. 적어도 당장 빠져 죽을 상황은 아니었다.
서로가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의문을 표할 때 각자의 머리 위로 작은 알림이 하나 떴다. 여덟 명의 머리 위로 떠오른 알림은 모두 똑같은 내용이었다.
[QUEST 01.
여러분들은 바다에 빠진 상황입니다. 바다 아래에는 식인 상어들이 헤엄쳐 다닙니다. 조용히 먹이를 노리는 식인 상어들에게서 벗어나려면 중앙에 있는 배에 타야만 합니다. 배에 탈 수 있는 인원은 일곱입니다. 서로 논의하거나 개인 선택으로 낙오자를 선별하면 됩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NO]
퀘스트는 읊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으로 들어왔고 덕분에 여덟 명은 정신 없는 와중에도 내용을 이해했다. 그와 동시에 방 중앙에 하얀색 배 하나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현실감은 멀쩡하던 방에 바다가 생기면서부터 깨진 후였다. 그때 다시금 한울이 입을 열었다.
「참가는 자유. 완료 보상은 별 하나. 우승자는 두 개를 추가 지급. 방을 나가려면 별을 많이 모아야 해. 별은 특정 조건 안에서라면 빼앗는 것도 가능하고. 낙오자는 똥을 받을 거야. 그거 받으면 죽어. 다수가 낙오 되면 랜덤으로 한 명을 뽑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선택해.」
한울은 참으로 간사했다. 상어 먹이에서 자유로워지고 죽음을 확실하게 피하는 대신 탈출 가능성을 줄일 것이냐, 죽음을 각오하고서 방을 나갈 가능성을 높일 것이냐, 이미 선택권 따위 없었다.
「앞으로 십 초. 그 안에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 참가로 여기겠어. 10, 9, 8, 7, 6, 5…….」
한울이 초읽기를 시작했다. 너무도 두근거리고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고작 십 초였지만 심장이 떨려 미칠 것 같았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류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일.”
한울이 마지막 숫자를 외침과 동시에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한 명쯤은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너무 기뻤다. 어떤 일이든 예상대로 흘러가는 건 기분이 좋았다.
모든 상황을 손바닥 위에 올린 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었다.
“참가자 총 일곱 명. 남은 자리는 총 여섯 개가 됩니다.”
모니터 안에 있던 여덟 명이 눈앞에 뜬 알림을 보며 알림을 확인했다. 참가하는 인원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그와 동시에 여성 한 명이 사라졌다. 그녀는 곧 모습을 드러냈는데 놀랍게도 배 위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리는데 당황한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물에 떠 있는 사람들 또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배에 탄 여성을 올려다봤다. 믿기지 않는 일과 비현실적인 현실은 딜레마를 낳았다. 믿을 수 없음에도 믿어야만 하는 상황은 사고를 마비시켰다.
사람들은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배에 오른 여성에게 분노가 치밀면서도 몸은 쉼 없이 움직였다. 물은 전신을 집어삼킬 것처럼 달려들었고 체온마저 떨어지기 시작하니 급격한 추위가 느껴졌다. 모든 게 좋지 않았다. 괜찮은 건 하나도 없었다. 괜찮아 질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
“퀘스트를 포기한 ‘지애’가 배에 올랐습죠.”
해태는 진행 상황을 한울에게 알렸다. 알림은 게임 내에서만 뜨도록 설정되어 있어서다. 한울은 괴롭히라고 있는 심복을 힘껏 부려 먹었고, 해태는 알림 문구 작성과 더불어 귀찮은 일이 늘어난 셈이었다.
보고를 들은 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기대 되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잔뜩 고대했던 영화가 드디어 막을 올린 기분이었다. 한 명은 혼자 살겠다고 일곱 개 뿐이었던 자리 중 하나를 차지했다. 보상을 버리고 안전을 택한 대가였다. 문제는 남은 자들이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였다.
절대 곱게 비칠 리 없지. 살 확률이 줄었으니까 분노할 거야. 경쟁은 더 치열해질 거고.
“하하, 하하하! 너무 재밌어. 재미있다고! 남은 자리를 놓고 아등바등할 저들이 재미있어서 미치겠어. 어서 보고 싶어. 어떤 식으로 싸울까? 능력을 이해한 사람은 몇 명일까? 나에게 카타르시스를 줘!”
한참을 웃어젖히던 한울은 가까스로 진정하며 다시금 모니터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였다.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는 꼬락서니나 충격에서 허우적거리는 몰골은 하나같이 웃겼다. 볼수록 호쾌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희극이 아니겠는가.
“그러다 숨넘어가지요. 참가자들에게 능력을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으셔요? 더 재미있으실 텐데요.”
해태는 터지려는 한숨을 참으며 의문을 표했다. 천벌 받을 질문이었지만 모시는 주인이 정상이 아닌 탓인지 이제는 체념을 넘어 호기심이 들었다. 한울을 더 알고 싶었다. 해태는 어떤 방식으로든 주인을 이해하고 좀 더 잘 보필하고 싶은 심복의 마음을 느꼈다.
한울은 의아해하는 해태를 슬쩍 쳐다보는가 싶더니 다시금 모니터를 응시했다. 기대했던 답은 떨어지지 않았다. 해태는 이대로 무시하겠구나, 하고 여겼다. 그대로 포기하려는데 한울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답변을 고민했던 것인지, 변덕으로 답하기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알려줬어.”
“하지만 그건 설명했다기 보다는…….”
“말귀를 알아 듣고 말고는 그들 능력이지. 어쨌든 정보는 줬으니 먹든 뱉든 하라 그래.”
해태는 무덤덤하게 떨어지는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재미를 얻으려는 한울치고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해태는 도저히 한울의 머릿속을 알 수 없었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얼굴 너머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까.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알아들었을까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겠지. 아는 사람 사이에서도 생각을 의심하는 부류와 확신하는 쪽으로 나뉠 테고, 또다시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이와 용기 없는 자로 갈릴 거야. 누군가 능력을 쓴다면 나머지는 싫든 좋든 파장에 휘말릴 걸? 그때부터 본인만의 스타일을 찾는 부류와 무슨 일인지조차 모르는 이들 사이에서 눈치 싸움이 시작될 거야. 내가 보고 싶은 게 바로 그거거든. 목숨을 담보로 한 피 터지는 눈치 게임.”
허허허. 해태는 한참 꼬인 속에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어쩜 저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모셔야 할 주인임을 상기했다. 심복으로서 허락 받지 않은 첨언은 본분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신이, 현자들이 직접 맺어준 인연이니 부정하며 멀어지려 해도 언젠가는 마주치게 되어 있었다.
해태는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어 화병이 날 것 같았다. 가슴을 탁탁 두드리며 심호흡을 해도 답답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불안한 주인은 처음이었다. 늘 가슴 졸여야 하니 없던 명줄이 생길 것 같았다. 해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문제뿐인 주인을 바라보며 한숨을 삼킨 채 물었다.
“게임에서 죽는다 해도 현실과는 별개라는 사실 또한 일부러 숨기신 건가요?”
“응. 이번에 죽어도 다음 퀘스트 때 부활할 테니까. 멀쩡하지는 못하겠지만. 부활 기능 없는 게임 봤어? 그건 기본 능력이라고. 게다가 신이 사람을 죽이면 바로 소멸한다며? 어차피 못 죽인다는 거잖아!”
잘 설명하던 한울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말을 하다 보니 억울해져 바닥을 굴렀다. ‘신이 사람을 죽이면 소멸한다.’는 전재는 거짓말이지만 중요한 건 한울이 모른다는 점이었다. 앞으로도 몰라야 했다.
“인간을 보살펴야 할 신이 살생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세계가 무너지고 파멸이 찾아올 겁니다. 또한 저는 인간들이 하는 게임을 모릅죠.”
“그럼 당연히 알게 해.”
발악이 지루해졌던 한울은 모니터를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참가자들에게 집중했다. 해태는 더 질문하려다가 생각을 바꾸며 입을 다물었다. 한울을 상대로 말대꾸는 금기였다. 머릿속에서 적색경보가 쩌렁쩌렁하게 울린 해태는 두말없이 직감을 따랐다.
“게임의 묘미 중 하나는 현실과 게임을 분리함으로써 같은 사람이 연이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위 사실은 다음 퀘스트가 진행될 때 드러날 텐지만 지금은 모르잖아? 다들 충격이 얼마나 클까? 아, 기대 되네. 충격은 얼마나 갈까? 지금보다 더 놀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집중하던 한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화를 그만두었던 때가 불과 몇 분 전인데 벌써 수다가 그리웠나 보다. 해태는 그러려니 하며 진심으로 경청했다. 화를 면하고 싶을 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두고 보면 조만간 알겠지요.”
해태는 적당히 맞장구쳤다. 자신은 애먼 고생할 이들이 불쌍해 죽을 것 같은데 한울에게 사람이란 생명이 있고, 피를 흘리며 생각과 감정이 있는 고성능 장난감에 불과했다. 한울은 장난감의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거나 생명을 빼앗으며 놀았다. 망가지면 다른 장난감을 찾아 나섰다. 한울은 악마 그 자체였다.
“살인에 적극적일 부류라면 뻔하잖아? 당연히 ‘초대자’들이겠지. 의외로 동반자들이 초대자들을 괴롭힐 수도 있어. 죄책감도 덜할 걸? 쉽게 살인을 선택할 거야. 이게 재미있는 거라고! 결국 누가 ‘나쁜’ 놈이고 ‘착한’ 놈일까? 해태야, 너는 알아?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일까? 벌 받아야 할 존재는 누구고, 구원 받을 존재는 또 누가 되어야 할까? 차이가 있기는 할까?”
해태는 절로 끙 소리가 나왔다. 역시 이번 주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타인의 공포를 상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다니, 인간이 맞기는 한 걸까. 몇 번을 생각해도 신의 그릇이 아니었으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울을 따라 공포를 조장하고 살인을 부추기는 수밖에 없었다. 주인을 보필하는 방법이 참 끔찍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던 해태는 묵언을 택했다. 차라리 벌을 받는 편이 나았다. 한울은 시간이 흘러도 대답이 들리지 않자 예상대로 짜증을 부렸다. 온갖 폭언이 이어졌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자, 한울은 해태에게 개 목걸이를 채운 뒤 해괴한 자세를 요구했다.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허리를 들어 온몸을 반원 모양으로 만든 해태는 한울의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런 자세는 어떻게 고안해 내는지 신통방통했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팔다리는 무게를 지탱하려고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만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는 유지해야만 했다.
잠시 감상하던 한울은 씩 웃더니 높게 솟은 배 위에 앉았다. 그 후 다시금 모니터를 응시했다. 배 높이가 낮아진다거나 떨림이 느껴지면 사정없이 목줄을 잡아 당겼다. 해태는 묵묵하게 견디며 한울의 심통이 빨리 풀리기만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