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범근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었으나 떨리는 몸까지는 막지 못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시윤은 식은땀을 너무 흘러 실신할 지경이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을 목격한 탓에 다들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찬찬히 모니터를 확인하던 한울은 혀를 찼다. 상상했던 시작과 많이 달랐다. 처음부터 공포를 심어버렸으니 앞으로의 전개 또한 달라질 터였다. 기대했던 재미가 반감될 테니 기분이 가라앉을 만했다. 본래라면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조차 모를 만큼 서서히 공포를 주입할 생각이었다. 이성이나 정신보다는 몸과 본능을 먼저 공략하려 했는데 망했다.
“하, 어쩔 수 없지. 이번 방은 조금 노골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한울이 다시금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분명 멀리 던져진 마이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와 있었다.
「이제 진정이 된 것 같으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까?」
범근이 산소를 급하게 들이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다시금 한울이 입을 뗐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공포를 가진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쉼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는 나 또한 언제 같은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말 한마디로 죽을 수도 있는 공포, 해코지하지만 않는다면 복종하겠다는 의사까지 전부 드러냈다. 암묵적으로 자유를 박탈 당하는 순간이었다.
「게임은 간단해. 퀘스트를 완료하는 거야. 퀘스트가 풀리면 보상이 따르겠지. 혼자 완료해도 좋고, 다른 사람 손을 빌려도 상관 없어. 보상을 독식하느냐, 나누느냐의 문제겠지. 여기까지 질문 있는 사람?」
목소리가 뚝 끊겼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치를 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하나같이 할 말이 많은 얼굴들이었지만 나서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오지랖 부리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질문을 하라지만 입을 열자마자 죽일지 누가 아는가. 미영은 눈짓으로 타인을 궁지로 내모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자신 또한 다르지 않다는 자괴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시답잖은 질의응답 따위는 집어치우고 빨리 그놈의 게임인지 뭔지를 시작하란 말이야! 어차피 우리 이야기를 들을 생각 따위 없는 거 다 안다고! 입을 열면 죽일 거잖아! 제발 여기서 내보내 달란 말이야!
한울은 시간이 흘러도 말을 잇지 않았다. 방 가득 불편한 적막이 흘렀다. 미영은 눈치 싸움에 질식사 할 것 같았다. 너도나도 대신 나서줄 사람을 찾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입을 열라고 무언으로 종용하나, 본인만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만은 살아야 한다는 잔인한 본성이었다. 적막이 이어졌다.
일 초가 흐르고…… 십 초가 흐르고…… 삼십 초가 흘렀다.
째깍, 째깍. 어느 순간 조용했던 방에 초침 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다들 심리적인 압박에 환청이 들리는 거라 생각했다. 끔찍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라고. 하지만 소리는 실재했다. 일 초마다 확실하게 존재를 알렸다.
째깍, 째깍. 사람들 얼굴에 좀 더 짙은 불안이 드리워졌다. 초침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마치 초읽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무얼 카운트 하는 걸까. 저 소리는 몇 번 만에 끝날까. 소리가 끝나면? 그때는? 그때는 어떻게 되는데?
째깍, 째깍.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그때였다.
“저, 저기요!”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기어코 입을 열었다. 사람들 시선이 한 방향으로 쏠렸다. 잔뜩 힘을 준 채 눈을 부릅뜬 미영이 있는 자리였다. 미영은 얼마나 긴장했는지 꽉 말린 주먹 안으로 땀이 찼다. 긴 손톱이 생살을 찌르는데도 주먹을 펼 수 없었다. 차마 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을 여는 사람이 자신은 아니기를 바랐다. 누구라도 좋았는데 결국 스스로 나섰다. 침묵에 질식하여 죽느니 입이라도 열어보자는 심정이었으나 막자 저지르고 나니 잘한 일이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미영은 자신에게 쏠린 수많은 눈동자에 지레 겁 먹었다. 조금만 잘못 되어도 모두 제 탓일 것만 같았다. 사람들에게 물어 뜯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뒤늦게 밀려들었다. 부담감에 숨이 턱 하니 막혔다.
질문하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방해하는 것만 조심하면 될 거야. 말을 끊지 않도록, 다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입을 다물어야지. 그럼 안전할 거야. 해코지 하지 않을 거야. 안전할 거야.
“지, 지, 질문 해도, 되, 되나요……?”
「너희들 진짜 대단하다. 딱 이십삼 분 사십오 초 만에 입을 열었어. 좀 더 빠를 줄 알았는데.」
“헉!”
미영은 입을 틀어 막았다. 곧바로 든 생각은 ‘이제 죽겠구나!’였다. 질문이 언제 나올지 초 단위로 셈하고 있었다니,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더 늦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다.
애써 힘을 낸 도박의 결과는 꽝이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던 미영은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볼 아래로 굵은 눈물이 빠르게 흘러 내렸으나 숨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혹 새어 나가기라도 할까 봐 필사적으로 호흡을 참았다. 미영이 괜한 짓 했다며 자책하고 있을 때 다시금 한울이 말했다.
「질문해. 그러라고 기다린 거니까.」
“아, 아-아…….”
고작 몇 초 만에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 한 미영은 탈진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정신력이 버틸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으나 이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정말로 해코지 당할 터였다. 미영은 딱딱 소리가 나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뭐라도 좋으니 질문을 해야만 했다. 질문만 하면 전부 끝나리라.
“그, 그러니까, 퀘스트를 완료 하, 하면 보상을 준다고 했잖아요?”
「어.」
“보상, 보상이 뭔가요?”
정신 없었던 미영이 고른 질문은 ‘보상’이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이 그것 뿐이었지만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컸다. 실상은 절망적일지라도 어감만큼은 희망적이지 않은가. 사람들은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귀 기울였다. 가장 궁금한 사항은 아니어도 방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에는 충분했다. 숨을 고르던 사람들은 대답을 기다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려졌다.
무의식적으로 동아줄이 될만한 단어를 고른 미영은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펑 하고 터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린다면 미영이 느끼는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실수하지는 않았을까.’, ‘질문은 적절했을까.’, ‘대답이 없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뭐라 하지는 않겠지.’, ‘나는 할 만큼 했어.’ 등등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나 결론은 한 가지였다. ‘죽고 싶지 않아.’
「그게 궁금해? 퀘스트마다 다를 거야. 최종 보상은 여기서 나가는 게 되겠지.」
미영이 다리를 덜덜 떨 때 한울이 말했다. 그는 오래 끌지 않았다. 저들은 충분히 겁 먹었고 어서 퀘스트를 시작하고 싶었다.
“여기서 내보내 준다고요?”
사람들은 움찔움찔 하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들, 각기 잡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 쿵쾅거리는 심장, 가팔라지는 호흡까지 똑같았다. 짜증, 불안, 원망, 하소연, 억울함, 슬픔 등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은 달랐으나 결국은 하나로 귀결 되었다. 미영과 같았다.
그들은 미영을 곁눈질하며 안도했다. 일이 잘못 되더라도 자신들은 좀 더 안전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사고방식은 이기심을 버리지 않았다. 나서달라고 강요한 적도 없으니 죄책감조차 들지 않았다. 그때 한울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 너희들은 퀘스트를 거절할 수 있어. 패널티도 없지. 수락한 퀘스트는 물릴 수 없으니 신중히 결정하고. 질문 있는 사람? 이미 질문했던 사람은 안 받을 거야.」
헉!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금 정적이 이어졌으나 처음만큼 길지는 않았다. 이번에 입을 연 사람은 연신 손톱을 물어뜯던 수호였다.
“퀘스트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 우리에게 뭘 시키려는 거야?”
수호는 옆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현재를 보며 인상을 구기더니 고개를 들었다. 조용히 지켜본 결과 요구만 잘 따르면 문제는 없었다. 왜 계속 질문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먼저 발을 빼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높아졌다. 현재보다 먼저 소리 낸 이유는 뻔했다. 자신이 안전해야 현재를 챙길 것 아닌가.
한울은 잔뜩 긴장한 수호가 식은땀을 흘리기 직전 입을 뗐다.
「이제 적응 좀 했나 봐? 질문이 두 개나 나오네. 그것도 꽤 빨리. 퀘스트를 수락한 사람은 게임에서 제공하는 능력을 쓸 수 있어. 능력을 활용해 퀘스트를 하는 거지. 내가 했던 인사말은 기억하지? 두 번째 질문은 게임을 하다 보면 싫어도 알게 될 거야. 질문 있는 사람?」
“악!”
한울이 말을 멈추는 순간 커다란 비명이 방을 가득 울렸다. 비명을 토한 주인공은 현재였다. 현재는 고통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팔을 들며 이를 악물었다.
「뭔데? 그냥 말하면 될 걸, 왜 소리를 질러?」
비명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울이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했다. 현재는 터지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막으며 호흡을 정리했다. 옆구리를 어찌나 세게 치는지 도저히 소리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수호가 무얼 하려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원만한 방법이 있었을 거다. 고민도 없이 폭력부터 가하는 모습은 참으로 수호다웠다. 현재는 웃음이 나면서도 실망하기도 전 체념부터 했다.
“내가! 내가 질문할게요!”
현재가 잠시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나리가 외쳤다. 꽤 절박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공을 향해 고개를 쭉 빼기도 했다. 나리는 뒤늦게 수호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유일하게 얼굴을 아는 지애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번 순서를 차지하고 싶었으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 돼. 쟤가 먼저 말했잖아. 어떤 질문이기에 나한테 소리 친 건지 들어야겠어. 별것 아니면 각오해야 할 거야. 기분이 몹시 나빠지려고 하거든. 아니, 정정. 방금 개 같은 심정이 되었어. 입 잘 털어라.」
나리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낭패인 건 현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호는 눈빛으로 종용했지만 현재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라도 주든가, 이어서 질문해야 한다고 언질이라도 하든가. 불만이 컸지만 머릿속으로는 필사적으로 질문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