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시작 03

005

by DAR LIM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감히 나를 무시해? 삼 초 마다 혀를 1mm 두께로 포 떠버릴 거야! 다시는 개기지 못하게! 시발! 좆같은 씹새끼가!”


한울이 마이크를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마이크였기에 그게 없으면 소통이 안 되었다.


“아이고-오! 아이고! 신이 인간을 죽이다니요!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로 아니 될 말이지요!”


해태는 잔뜩 흥분한 한울을 뜯어 말렸다.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화면에 비치던 인물 중 한 명이 목을 조르며 꺽꺽 넘어갔다. 눈 깜짝 할 사이도 아니었다. 눈꺼풀이 채 내려가기도 전이라 말릴 틈도 없었다. 떡 벌어진 입도 일이 터진 후에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가까스로 정신 차린 해태는 죽기 살기로 한울의 허리에 매달렸다. 연신 씩씩거리며 발로 바닥을 세게 구르는 한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랄 발광은 분명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한울은 권능으로 범근의 목을 졸랐다. 해태는 정말로 사람을 죽이려는 모습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살인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모습은 소름 돋기에 충분했다.


해태는 위에 있을 전지자들 눈치를 봤다. 만약 그들이 이번 행동을 문제 삼기라도 했다가는 큰일이었다. 신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갖은 추궁을 당하며 재수 없을 시 경을 치를 수도 있었다. 전지들의 잔소리와 문초는 상상을 초월했다. 차라리 한울의 변덕을 상대하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한계까지 팽팽하게 늘어난 동아줄을 어떻게든 끊어지지 않도록 애써 부여잡는데, 한울은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독한 똥고집에 떼쟁이였다. 해태는 신을 모시는 신성한 존재로서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살욕[殺慾]을 느껴야 했다. 막말로 때려죽일 수도 없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거 안 놓냐? 어차피 저 새끼는 ‘나쁜 놈’으로 참가 했잖아! 그냥 죽어! 지금 죽어! 당장 죽어!”

“아이고! 아이고! 신이 사람 죽인다! 사람을 죽이려 한다! 아니지요! 안 됩죠! 이러다 주인님이 변을 당하십니다요!”


턱 아래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똥줄이 탄 해태는 목이 터져라 곡 소리를 내뱉었다. 엉엉 울면서 사정하는 수준이었다. 한울은 해태가 눈물로 폭포를 이루든 말든 더한 거품을 물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관자놀이와 손목에 핏대가 섰고 흰자위에 붉은 핏줄이 드러났다. 그럴수록 범근은 목을 강하게 옥죄며 진심으로 괴로워했다. 동공이 거의 사라진 모습은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이고! 꽉 닫힌 솥뚜껑도 아니고! 공들여 만드신 게임, 시작 한번 못 해보고 끝내게 생겼습니다요!”


더는 방도가 없던 해태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소리쳤다. 게임은 한울이 가장 공들인 일이었다. 권능을 휘두르려면 ‘게임’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해서였다. 목적은 잠시라도 좋으니 틈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한울은 움직임을 뚝 멈췄다. 움직임 뿐만 아니라 폭력처럼 휘두르던 권능도 그만두었다.


잉? 아! 오호라? 이거였구나! 감 잡았어!


해태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상체를 돌리는 한울과 눈을 마주치며 속으로 외쳤다. 새 주인을 섬기게 된 후 처음으로 빛이 보이는 듯했다. 가뭄으로 메말라 죽어갈 때 입술을 적시는 비 한 방울도 이보다 기쁠 수는 없었다. 반짝! 하고 길이 떠올랐던 해태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한울이 잠시라도 조용해졌을 때가 기회였다.


“이대로라면 권능을 잃으실 수도 있습죠! 그래도 좋으십니까? 게임도 못 하게 되십니다!”

“뭐? 안 돼!”


기겁한 한울은 놀랄 만큼 빠른 태세 전환을 하더니 다짜고짜 해태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번뜩이는 눈동자에서는 폭죽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한울은 화가 난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번에는 범근이 아닌 해태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


“무슨 말이야. 당장 설명해.”


갑작스럽게 멱살이 잡힌 해태는 한울이 아닌 좀 더 먼 곳을 응시했다. 등 뒤에 놓인 모니터에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범근이 비쳤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껏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은 제법 멀쩡했다. 얼굴이 제법 붉어졌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안도한 해태는 그제야 눈동자를 돌려 화르르 끓어오르는 중인 한울을 응시했다. 화냈다가, 놀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분노했다. 한울만큼 감정 변화가 다채로운 영혼이 또 있을까.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던 해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번 주인이 정상이 아님은 첫 만남 때 깨닫지 않았던가. 매번 상기하다가는 명줄이 남아나지 않았다. 한울은 최대한 마음을 비우며 입을 열었다.


“신이 인간을 죽이면 권능을 빼앗기고 그 즉시 소멸하지요. 직접적인 살생은 절대 금기입니다. 이건 꼭 명심하셔야만 합죠!”


해태는 신수의 사활을 걸고 애원했다. 비록 거짓말이었으나 안 들어주면 당장 혀 깨물고 자살할 것처럼 비장했다. 한울은 해태가 비장하거나 말거나 온갖 생떼를 썼다. 애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웃기시네!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하고 싶다는데! 내가 신이라는데!”

“짐승 위에 인간 있고, 인간 위에 신수 있고, 신수 위에 신이 있고, 신 위에 전지자가 있는 거 모르십니까? 절대로 안 됩지요!”

“전지자가 뭔데?”


숨넘어갈 듯 거품을 물다가 그걸 묻는다고?


해태는 한울이 거치는 사고는 그 누구라도 흐름을 잃지 못하리라고 장담하였다. 절대로 빈말이 아니었다.


“세상을 관장하는 분들입니다. 그분들 손을 거쳐 신이 탄생합지요. 인간들 말로는 ‘현자’라고나 할까요?”

“안 돼! 싫어! 내가 신이야!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고! 현자가 법이야?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생떼가 그치나 싶었더니 한울은 다시금 목청 높여 고함을 질렀다. 이쯤 되니 해태는 되레 초연함이 찾아왔고 더는 실랑이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여기 있지요. 전지자님들이 만들어 놓은 이치가 그러하니 이해를 바라나이다.”


차분하게 흘러나오는 말은 당연히 거짓이었다. 신이 소멸할 때라면 영혼의 쓰임이 다했을 때 뿐이었다. 전지자들은 신이 하는 일에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비록 명줄이 줄어드는 일들만 벌이는 한울일지라도 당장은 안전했다. 나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지자들이 고작 며칠 만에 새 후보를 뽑을 리 없었다. 많이 개입이라고 해 봐야 따끔하게 혼 내는 정도일까.


영리한 해태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나아가 한울이 벌한 인간은 ‘선’하지 않은 ‘악’한 영혼이니 재수가 좋다면 그냥 넘어갈지도 몰랐다. 정말로 재수가 좋다면. 해태는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니 오늘 같은 일은 삼가십시오. 이 해태, 진심으로 간 떨어지는 줄 알았사옵니다.”


더는 빌 방법도 없었던 해태가 양손을 맞잡으며 간곡히 청했다. 제발 받아들여지라고 기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속이 터질 것 같아 간 떨어지겠다는 말을 했지만 표현만큼은 진심이었다. 살생을 막아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어떤 덤터기를 썼을지 몰랐다.


전지자들은 늘 신수를 통해 전언을 넣으니 잔소리와 꾸중은 모두 제 몫이었다. 전언을 들을 한울은 분명 노발대발 할 테고 또다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내려온 전언을 알리지 않는 것도 문제였으니 중간에 끼여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었다. 해태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네가 왜?”


해태가 촉촉이 젖은 눈으로 애원하는데도 한울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을 벌인 장본인은 자신 아닌가. 반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해태 또한 한울만큼이나 의아한 얼굴을 했다.


“왜 네가 간 떨어질 뻔했냐고. 게임은 내가 만들었거든?”


한울을 대답 없는 해태가 답답하여 다시금 물었다. 당장 듣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시간이라도 끄는 건지, 화가 났다. 한울이 인상을 쓰며 불편함을 드러내자 해태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한울이라면 웃는 얼굴 위에도 침을 뱉을 위인이지만 그렇다고 우는 것보다는 나았다. 울어봐도 나아지는 것은 없더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대응이었다. 해태는 최대한 정갈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수로서 모시는 주인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죠.”


고초를 겪는 쪽은 늘 아랫것들이니 주인이 잘못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수라서? 아, 맞다. 짐승이었지. 하긴 개도 주인한테는 꼬리를 흔드니까.”


금세 납득한 한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 주어 잡았던 멱살은 풀린 지 오래였다. 해태는 커다란 오해가 생겼음에도 트집 잡지 않았다. 한울의 변덕을 피할 수 있다면 짐승 취급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해태는 한울의 장단에 맞추려고 힘껏 아양 떨었다.


“아유, 그럼요. 이 해태는 주인님 앞에서 없는 꼬리까지 흔들지요.”


해태가 엉덩이를 잔망스럽게 씰룩거렸다. 잘 좀 봐달라는 애교였으나 한울은 다르게 이해했다.


“박는 건 취향이 아닌데, 나는 박히는 게 좋아. 이왕이면 허리를 흔들어 줄래?”

“예?”


박느니, 박히느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해태가 눈을 깜빡였다. 한울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해태를 둔 채 다시금 몸을 돌려 모니터를 응시했다. 잠시 내버려두었더니 방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화요일 연재
이전 04화게임의 시작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