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가는 아내를 둔 10년차 남편의 일기

그놈의 '대단하다.'

by 글쓰는에이든
"우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아~"


요즘 많이 듣는 말이다. 아내가 캐나다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정하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가기 전 준비 단계로 필리핀 단기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6개월 정도의 별거 기간, 어감이 다르긴 해도 별거는 별거다. 근데 그 별거도 별거 아니더라.


회사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에 가서 아내가 외국에 가게 되었다고 말을 하면 항상 듣는 말이 '대단하다!'이다. 왠지 모를 안쓰러운 미소와 함께 그저 대단하단다. 뭐가 그리 대단한 건지 참... 물론 어떤 의미에서 대단하다고 하는 건지 나도 잘 알지만, '그것이 그렇게 대단할 것인가?' 싶기도 하다.

본인이 원해서 가고 싶어 하고,
그걸 보내준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대단할 것인가?


아내는 몇 년 전부터 외국에 나가고 싶어 했다.


아내는 직장생활이 바쁜 와중에도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김포에서 강남까지 학원을 다니며, 대학생들 정도나 수료가 가능한 소위 빡센 영어 교육과정들도 묵묵히 받아가며 영어를 틈틈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영어 학원을 못 다닐 때에도 화상영어, 전화영어 등으로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해 왔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옆에서 봐 와서일까? '한 번쯤은 외국에 살아 보고 싶다.'는 아내의 말은 나에게 어떤 조건이나 부담으로 와닿지 않았고, 정말로 가 보고 싶은 그녀의 순수한 마음으로 와닿았다.

내가 대학원 시절 외국에 유학가고 싶었던 그 마음처럼...


나도 한 번쯤은 외국에 유학을 가거나, 외국 사회를 경험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호텔경영학과나 관광경영학과로 진학하고 싶어 했었고, 내 인생에 한 번쯤은 외국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견문을 넓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닐 때 외국 유학의 기회도 찾아왔었다. 대학원 차원에서 교류했던 홋카이도 대학의 교환학생 제안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일본어 자격'도 준비하지 못한 나였기에, 유학의 기회는 좌절되었다. 학업이나 일을 핑계로 언어 공부에 미진했던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실패 경험 때문일까?

외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회사도 다녀보고, 외국 사회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도대체 왜?'라는 생각보다는 '좋아!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가족들은 어떻게 설득하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지?'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그 뒤에 따라왔지만 말이다. 이제는 가족들의 응원 반 걱정 반을 받아가며 아내가 캐나다로 가는 것이 확정되었고, 다음주가 되면 본인의 몸집보다 더 큰 이민 가방과 캐리어들을 열심히 옮겨가며 머나먼 타국으로 떠날 것이다.


아내의 사주에는 꽤 강한 '역마살'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주던, 점사이던 공통적으로 외국에 나가면 일이 더 잘 풀린다는 풀이들이 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물론 사주나 점사대로만 삶이 흘러갈 것이라고만 보지는 않지만, 아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나 신념,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고려했을 때, 외국 경험을 해 보는 것이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가족'이다.

작게는 아내와 나, 그리고 나이 많은 고양이와 함께 꾸리고 있는 우리 가족이며, 크게는 아내의 가족들 그리고 나의 가족들이 가족으로서 함께 엮여 있는 점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족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럼 애기는 영영 안 낳을 거니?', '외국 생활을 할 만큼 충분히 여유가 되니?', '남편 혼자 있는 것은 어떻게 할 거니?' 등과 같은 현실적인 질문들이 뒤따라 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언을 해버렸다.

'애기는 낳지 않는 것으로 알고 계세요.', '외국 생활 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지만, 가족들에게 손은 안 벌리도록 노력할게요.', '저 혼자 있는 것은 걱정을 마세요. 저 혼자도 먹을 거 잘해 먹고 잘 살기만 하는걸요.'로 일단락을 지어버렸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이런저런 부분이 서운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가족들 간 선언 이후에 벌써 D-Day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설명절에 가족들과 인사도 나누고 혹시나 서운해하실 장모님을 위해 딸, 사위, 장모님, 시어머님 간 행복한 추억 쌓기 시간도 만들었다. 이제 정말 가기만 하면 된다!


아내에게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아내도 너무 잘 알고,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서로 간의 '마음'일 것인데, '무엇이든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된다.'는 믿음이다. 아내가 캐나다에 가는 지금의 모습, 이 모습도 몇 년 전 언젠가 강남 영어학원을 다닐 때 간절히 원했던 본인의 모습일 것이고, 내가 가고 싶었는데도 날려 버렸던 유학 기회를 '언젠가는 다시 가져볼 날이 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 모든 바람들이 한데 얽히고설키고 모여 지금, 우리의 현실, 현재(present)에 선물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아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 행복이 우리가 언제쯤에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로 자리 잡아야 하고, 언제쯤에는 집을 사야 하고, 언제쯤에는 애 엄마, 애 아빠가 되어야 하고, 언제쯤에는 애기들을 좋은 학군에 편입시켜야 하고, 언제쯤에는 애기들과 가족들이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야 하고... 그런 행복이기보다는 아내 자신이, 그리고 나 자신이 진심으로 나 다울 수 있는 그런 행복이기를 바란다.


그 행복 또한 지금의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에, 나 자신이 내는 목소리에 언제나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에 솔직하게 대답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대단하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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