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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곤 아저씨 Jan 12. 2024

어느 유기인의 반려생활 #1

나의 첫 댕댕이 호두 

일단 이 타이틀이 무슨말인가부터 시작해야 할듯하다. 여러분의 첫 번째 기억은 무엇입니까? 나의 첫 번째 기억은 추측상 3~4살 즈음로 추측 되는데, 길을 걷다가 어떤 큰 개와 눈을 마주쳤는데, 거의 눈높이가 맞을 정도의 꽤 큰 개여서 깜짝 놀랐는데, 원채 겁이 많았던 나는 잡고 있던 엄마의 손도 뿌리치고 줄행량을 치며 도망갔고, 그 개는 빠르게 나를 쫓아와 내 무릎을 물었고, 그 다음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장면정도로의 단편적 기억이다. 기억은 영상이 아니라 스냅사진처럼 남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순간의 스틸샷들이 나의 첫 번째 기억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기억은 엄마가 무슨 보따리를 손에 들고 대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서럽게 울고 있는 나인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떠나는 것이구나, 나는 버림받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고 서럽고 울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내가 우니 2살 어린 여동생 또한 따라서 계속 울고 있기에 그 어린 아이도 오빠라고 동생을 다독이며, 그렇게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얼핏 본 것 이 나의 두 번째 기억이다.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는 내 기억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왜 큰아버지 큰 어머니 집에서 있어야 하는지, 왜 눈칫밥을 먹고, 사촌 형 누나들에게 맞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채, 그러다 학교에 갈 무렵의 나이에는 새엄마를 맞이하여 왜 처음보는 저 여자를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는채 그렇게 그냥 삶은 흘러갔고, 나는 점점 더 성장을 하며 청소년, 어른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어차피 가지게 된 나의 결핍을 인정하고 수용하기 보다, 나에게 거짓말을하며, 나는 결핍되지 않았다. 나는 잘 살아왔고,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를 속이고 믿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뭘 알아서 그랬다기 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냥 본능적으로 날 지키기 위한 일종의 장기방어 기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나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게 믿었던 듯 하다. 그러다 40 중반을 넘어 생각지도 못한 결혼을 하게되고, 그리고 곧 뇌졸중으로 인생이 쓰러져 내려, 멈추어 거의 집에서 칩거할 무렵, 와이프와의 결혼 생활도 질병과 경제적 상황 악화까지 겹쳐 더 퍽퍽해져 가던 때, 그때 였다. 둘다 너무 늦은 나이라 아이도 없이 둘만이 가족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싸우거나 마음이 상할때도 그 공간에 그렇게 머무르며 일상을 맞이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 지던 시기에, ‘우리 강아지를 가족으로 하나 데려올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리 둘은 뭐라 할 것도 없이 당연히 동의하게 되었다. 단지 둘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어, 어떤 리스크나 어려움이 있을지, 어떤 것들을 각오하고 준비해야 할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는 온라인과 유튜브의 시대로  참으로 많은 정보와 경험담들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시기였고,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며 여러 가지 경로와 경우의 수를 예상해 보기 시작하였다. 일단 알게된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강아지들이 유기되고, 버려지며, 흔히 지나가며 보면 애견샵들이 돈벌이를 위한 인간의 탐욕으로 강아지 공장처럼 무척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애견샵에서 생명을 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심지어 와이프 친구까지 그렇게 조언하고 이야기하니 이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애초부터 함께 살아갈 가족을 찾는 것이 었지, 가지고 놀 장난감 같은 존재를 찾았던 것은 아니기는 하였지만, 어떤 종류의 아이를 아파트 형태의 주거에서 살아도 별 문제 없을 수 있을까부터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강아지의 종류도 좀 알게되고, 어떤 종류의 강아지를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선 첫 번째 탐색지는 유기견 보호소같은 곳들이었다. 유명한 유기견 보호단체에서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센터가 사는 지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 예약을하고 방문을 했을때가 그 첫 시작점 이었다. 이곳의 첫 인상은 사실 약간 충격적이었다. 20평대로 보이는 주택공간에 중형견 이상은 되 보이는 커다란 아이들이 우글우글하게 돌아 다니고 있었으니, 아 유기견이 정말 많기는 하구나 정도를 실감하기는 하였지만, 선뜻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 보이는 녀석들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실내에서 키우기 적당한 아이들은 작은 소형견들이고, 엄청난 운동력을 가진 개들은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기견들은 보통 버려지거나 학대받던 아이들이 많아서 처음에 적응하거나 그러한 습관을 바꾸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움이자 걱정의 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또 온라인 검색으로 알게된 안락사 없고, 최적의 환경에서 유기견들을 돌보는 곳이라니 좋은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좀 먼거리지만, 양평까지 달려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는 지역에 유기견 보호와 분양을 함께 한다는 샵 또는 기관에도 가보며 여러 곳을 방문하며, 실제 현실을 피부로 느껴보게 되었다. 일단 느낀 것은 유기견 보호하는  곳 대부분이 명분을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 다음, 애견샵 이상의 폭리를 취하기 위해 유지비, 책임비 등의 명목으로 200만원 이상의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쯤되니 슬슬 지치기 시작하였다. 아니 뭐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쁜 것이지, 샵에 갖혀 있는 조그만 강아지들이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니, 차라리 애견 샵에서 찾는게 빠르겠다 라는 생각으로 이르게 된 것이다. 차라리 대놓고, 알려진 가격대에서 이윤을 보겠으니 아이들을 상품처럼 전시하는 곳이,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곳들보다 더 신뢰가 갈 지경까지 갔으니 말이다. 제발 이 ‘일단 ~ 하고 보자’ 이런 태도가 확산되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긴 인생 짧게 보고 뭐 짧은 이익을 거두려는 이런 태도가 무척 넓고 파급력 있는 사람들의 외면과 비난으로 무너지는 건 참 많은 분야에서 목도되지 않았는가. 아무튼 노선을 선회해서 그냥 여러 애견샵을 돌면서 좋은 환경에서 강아지들을 돌보는 것으로 보이는 곳들 위주로, 어찌 되었든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녀석을 만나기를 희망하며, 또다시 여러 곳을 둘러보며 점점 지쳐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사는 지역의 어느 이미지 좋았던 애견삽에서 담당 직원분이 추천하는 성격좋고, 외모도 괘찮게 성장할꺼라 보는 한 3개월 령의 말티푸(말티즈와 푸들 믹스 견종)를 추천받고, 와이프가 그래 얘로 할께요, 라며 결정을 하는 것에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나또한 이제 꽤 지쳐서 이러다간 평생 강아지 가족을 맞이하지 못할 것 같아, 오케이 하였다. 집에 강아지 밥그릇 하나 없는데, 이대로 그냥 데려가면 되는 것인가 반문했더니, 필요한 물품은 다 서비스로 챙겨준다며, 켄넬, 울타리, 배변패드, 밥그릇, 그 케이지 안에서 짧은 생애동안 의지하던 쿠션과 장난감 여러 가지 것들을 챙겨주며, 그렇게 생애 첫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삶이 시작되었다. 서두가 넘 길어져 본론은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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