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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곤 아저씨 Nov 09. 2023

#08 다시 일상으로

어찌되었든 처음 기획했던데로, 글을 쭈욱 써왔고, 마지막 에피소드를 쓸 차례이다. 제목을 보자면 마치 아팠던 시기를 다 지나고 처음 아무 문제 없던 시기의 출발선상에 다시 선 것인가? 라는 착각을 들게 할 것 같지만, 다시하번 명확히 얘기하자면, 정말 SF영화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지 않는 한 원래 있던 자리의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런건 어차피 안되는 것이니 꿈꾸지도 말자. 어차피 안될 것을 꿈꾸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닌가. 내가 의미하는 다시 일상은 새롭게 변화된 새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삶으로 돌아왔다 정도가 맞는 정의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일단 나는 내가 거의 20여년 가까이 하던 공연 기획 일을 그만두었다. 가장 큰 이유는 순발력에 관련된 능력에 문제가 생겼고, 이건 쉽사리 돌아오기 힘든 것이라는 알고 나서부터 였던 것 같다. 이 순발력이 문제가 신체의 순발력만 안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순발력도 같은 맥락이 되어 버리는 건데, 이게 잘 아되는 걸 알고 일을 하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 였고, 기획일에서 순발력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하고 있기에도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듯 하다. 이와 관련해 좌절 했던 작은 에피소드가 있다. 주로 재활하며 집에만 있던 시기, 아 무슨 작은 경제 활동이라도 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런 저런 것을 찾아 보다가 쿠팡 로지스틱스 그러니까 물류창고 같은 곳에서 배송보낼 상품을 지역에 맞게 분류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이제한 없고, 야간 밤샘작업으로 하는 일이기에 시금도 좀 되고 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모바일을 통해 지원을 하고, 운전을 하지 말라해서, 알아보고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에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와이프에게 한번 다녀와 보겠다며, 한밤중에 길을 나섰다. 무척 추운 겨울 밤이었다. 버스정류장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어느 건물 상호 앞에서 탄다해서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니 어떤 남자가 쿠팡 셔틀버스 여기서 타는 거냐고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나도 처음이라 모르겠다고 했으나 맞게 온 것 이라는 건 느꼈다. 머지 않아 작은 미니버스가 도착했고, 몇 개 정도의 정류지점을 통과하니 10명 가까이 탑승을 하였다. 주로 젊은 친구들이 많이 탑승하는 걸 보고, 아 젊은 친구들 삶이 참 쉽지 않게 퍽퍽한 친구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커다란 공장 같은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혹시 못따라가서 이탈할까봐 긴장하며 주시하고 어린아이처럼 졸졸 따라 다녔다. 구분을 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조끼를 하나씩 나눠 주고, 다시 작업장으로 이동을 했다. 따로 특별한 교육 시간은 없었고, 물류 창고로 보이는 곳으로 데력가 몇 명씩 인원을 나눠 여러 스팟에 분산해 투입을 시키는 듯 보였다. 투입된 곳에서는 함께 투입된 일부 인원들은 유경험 자인 듯 했다. 자연스럽게 무엇을 해야할지 아는 듯 움직이며 물건들을 분류해나갔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바코드 같은 번호를 기준으로 각 해당 바구니에 물건을 넣고, 바구니가 다 차면 그 바구니들을 또 일정 지역에 쌓아 두는 그런 형태인 듯 했다. 그러나 인지 장애가 있는 나는 재빠르게 작은 글씨를 알아채고, 재빠르게 해당 바구니에 물건을 넣는 작업이 원할 하지 못했던 듯 하고, 혹시나 실수할까봐 다시 한번 텍스트를 확인하고 넣고 하며 더디게 작업을 하니, 누군가가 나를 불러 따라오라며 다른 직무를 하라고 하고, 그걸 하고 있으니 또 다른 사람이 불러 다른곳에서 다른 직무를 하라고 하는 것을 몇 번하다보니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가 어떤 관리자 같은 남자에게 데려가더니, 그 사람이 ‘집에 가세요’, ‘우리가 왜 돈을 주고 써야하는지 모르겠으니’ 라며 귀가하라는 말을 했다. 셔틀버스는 아침 근무 다 끝난 시간에야 운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셔틀을 타고와서 지금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겠다.’ 라고 그러니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요’ 라며 가버렸다. 영하의 추운 겨울 밤 새벽 날씨에, 허허벌판에 덩그러한 거대한 창고 같은 곳을 걸어 나오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집에 어떻게 가지? 라는 의문이었다. 나가는 택배 차량 기사님에게 나가는 길에 태워주면 안되냐 부탁해봤지만 죄송하다며 거절 당하고 이것도 안되겠구나 싶었다. 허허 벌판같은 곳을 걸어나와 결국에 이 새벽에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어 나 잘려서 집에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좀 픽업 와달라고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딱히 찍을 좌표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고, 안내 메시지 받았을 때 주소는 거대한 물류창고 전체 지역을 가르치는 주소였기에 뭐든 방법을 강구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네이버 지도를 켜 걸어갈만한 거리에 무언가 없을까 하며 무작정 한겨울 새벽 들판을 걸었다. 지도를 보니 무슨 초등학교가 가까이서 하나 잡혔고, 걸어갈만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무슨 조그만 초등학교 분교였고, 네이버 지도에 나오니 그 좌표를 와이프에게 보내 이리로 오라고 하며, 칠흑같은 겨울밤 앉아서 와이프가 오길 기다리며, 그래도 이렇게 와줄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운 것 같기는 하나, 씁쓸한 마음은 한겨울 새벽 바람보다 더 얼음장처럼 가슴을 얼리고있는 것만 같았다. 차를 타고서야 이런저런 이유로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니 와이프도 속상하고 화가 났는지, 깜박 벗어 놓고 오지 못한 작업 조끼를 밖으로 던져 버리라고 해서, 조끼를 벗어 실에 쌓인 눈위에 던져 버렸다. 허나 그 모습이 흡사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리기도 하였다. 일당 10몇만원 벌겠다는 단순 노동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 같아. 한 없이 작아지는 겨울 밤이었다.      

  이런 시기를 거쳐 나는 20여년 가까이 해오던 공연기획일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여러 가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퇴원히 우연한 인연으로 맡게된 연극 기획작업이 결국에는 그 고민에 종지부를 찍게 해주었다. 공연 작업이 원채 여러사람들이 함께 하는 작업이다 보니 근래 들어 항상 보이는 행태가 빠른 소통과 공유를 위해 단톡방을 만들고, 20대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스마트폰 자판 실력이 내 컴퓨터 자판 속도보다 빠른 것 같고, 웬만한 건 다 톡으로 하는 걸 선호하는 구나 라는 걸 느낀다. 뇌졸중 이후 컴터 자판도 잘 안되고, 심지어 문자조차도 전혀 이상한 문자로 보내고는 그걸 인지 못하는 것으로 충격을 받은지라, 지금쯤은 괜찮겠지라며 일을 맡았지만 물론 걱정은 되었다. 그러다 업무를 진행하던 초반부에 극단 대표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시냐, 바쁜 일이 있냐, 다른 일을 같이하고 있는게 있냐 등의 질문을 했고, 그렇지 않다라고 하기는 하였으나 그 질문은 한동안 집요하게 이어졌다. 단톡방에 내용들을 잘 놓치는 것 같고, 신경을 안쓰고 있다고 생각을 한 듯 싶었다. 결국 얘기하지 못했던 내가 아팠었던 이야기와 그로 인해 생기는 오류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본인 프로젝트와 사업에만 안위를 신경쓰는 사람들의 입장이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지만, 내가 아프다는 것으로 비난을 계속 받으며 원망을 드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20년 이상 해온 이 작업에도 정이 뚝 떨어지는 계기도 되었고, 그리고 잘 해낼 자신도 없어지는 계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내려놓는 선택 이외에는 별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을 내려놓을 수는 없기에 재활치료 잘 다니고, 건강관리를 위한 가벼운 운동은 꾸준히 하면서 차차 고민해 보기로 하였다. 그런 와중에 경제활동 휴지기가 너무 길어지게 되면서 와이프도 힘들어하며, 어느 정도 수준의 경제 활동을 해야 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 정도의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관련 웹사이트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50을 목전에 앞둔 중년 아저씨라는 하드웨어와 나 스스로는 뇌를 다치며 여전히 인지장애라는 부작용을 겪고 있는 와중에 선택지도 별로 없었고, 무엇이라도 가능하다면 무엇이라도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인력구인사이트 모집광고를 보며 여기저기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상했듯이 나이 많은 아저씨의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오는 곳은 거의 없었다. 예상한 일이건만 점점 막막해 지는 듯했다. 그러다 딱 한군데서 연락이 왔는데, 집근처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의 아파트 단지 보안요원을 뽑는 회사였고, 급여는 얼마 안되지만, 어렵지 않아 보여 이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원을 했었다. 처음으로 연락을 받은 것이었기에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면접 요청까지 있었기에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단순해 보이는 일인데도, 젊은 친구들이 많이 지원을 하고 있었고, 해서 나말고 결국에는 젊은 친구를 선택했던 것 같았다. 결국 면접 후 탈락 통보를 받고 결국 또 좌절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몇 개월 후 연말쯤 인가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받아보니 지원했던 그 회사에서 인력이 갑자기 그만우어 삼람이 필요한데, 주차단속쪽도 괜찮겠냐고 연락이 와서 가능하다고 하며 바로 얼마 후부터 일을 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일단 2교대로 근무 교대하는 일이라 일주일에 일하는 날이 평균 4일 정도라 신체적으로 전혀 무리가 없고, 앉아서 하는 일은 거의 없고, 하루 2만보 이상을 쉬는 시간을 중간 중간 가지면서 걸으며 해야하는 일이라 건강에도 좋은 것 같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거의 없고, 보수는 적지만 여러모로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온 상황이었다. 집에서 10분거리라 식사 시간에 집에 밥을 먹으러 다녀올 수도 있고, 강아지가 혼자 있을 때는 식사시간에 들려 밥도 주고 할 수 있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기회였다. 어찌되었든 수년이 걸렸지만, 걷는 것도 좀 부자원스러웠던 내가 지금은 줄넘기를 하루에 20회 이상 하고, 집근처 호수공원을 강아지와 산책하는 5km정도의 도보 운동도 하고, 

적지만 생활비를 벌기위한 노동활동을 하고, 이정도면, 아프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준의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나의 뇌졸중 경험의 공유이야기는 마지막으로 끝을 내려고 한다. 쓰다보니 뇌졸중을 앓고 계신 분들의 가족이나 옆에 분들이 많이 읽고 도와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고, 뇌졸중을 앓으신 분들에게 좀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으나 맘처럼 발현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혹시 개인적으로 궁금하고 질문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 문의 이메일을 남겨 놓을테니, 의학적 자문 이외에 무엇이든지 물어 셔도 좋다. 

twdrag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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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dragon       

다음 글은 반려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뇌졸중 시기에 처음으로 맡이하게 된 가족 강아지와의 삶과 이야기를 써복 싶었다. 아직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계속 고민중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시작해보고자 한다. 고민을 완성한다는 건 기약이 없으니. 

아무튼 이제껏 부족한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 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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