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한열에게

6월 10일에 만나요

by 초시계

6.10 항쟁이 발생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으로 겉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전두환 군사정권을 떠받치던 공권력의 폭력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여대생이 경찰에게 성고문을 당하고, 10시간 넘는 물고문으로 대학생이 죽어나가는 시절이었습니다.

30년전 오늘 이 같은 폭압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이한열 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군사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개헌을 수용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통령 직선제를 획득한 1987년 그날을 엠빅뉴스로 정리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7Z_GLu_ 엠빅뉴스 中



여김 없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영상들을 스크롤하다가 눈길을 끄는 썸네일을 봤다. 원래 썸네일이라는 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이상하게도 요란하고 영양가 없는 소개 화면들 사이에 혼자서만 일절 자막 없이 덩그러니 있던 영상에 홀린 듯이 커서를 갖다 대었다. 영상은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그 덕에 얻어진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내용이었다. 부모님께 전해 들어서 떠듬떠듬 조금은 알던 내용인지라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였다. 그렇게 영상을 다 보고 다음으로 볼 영상을 탐색하려던 찰나에, 영상의 설명란이 눈에 들어왔다.


6.10 항쟁이 발생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익숙한 숫자였다. 6과 10. 내 생일.

2009년의 이 시기에는 내가 태어났을 것이다. 6월 9일에는 양막이 터지고, 나는 엄마의 배 밑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6월 10일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였을 것이고, 진통이 이어졌을 것이고, 아빠는 초조하게 병원 복도를 서성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름을 정하고, 누군가는 탯줄을 자르고,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피 냄새, 소독약 냄새, 차가운 공기, 그 속에서 나는 세상으로 나왔을 것이다.

이제 1987년의 상황을 봐보자.

1987년 6월 9일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예정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이를 앞두고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다. 전국에 갑호비상령이 선포된 긴장된 상황 속에서 이한열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교문 앞에서는 백골단과 시위대가 대치했고, 곧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그 혼란 속에서 경찰이 발사한 SY-44 최루탄이 이한열의 뒷머리를 직격 했고.. 그는 정문 앞에서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지는 길,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내일 시청에 가야 하는데…”였단다. 누군가가 닿지 못한 6월 10일에 나는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나았을 수도 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역사를 몰랐으면 미국(美) 은 한자처럼 그저 아름다운 나라였을지도 모른다.‘라는 말.

그 말처럼, 정말 어쩌면 내가 이 사실을 알지 않았다면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고.

그렇지만 이미 알게 된 이상, 조금 주저리주저리 해보려 한다.


알베르 카뮈다. 표정이 오묘한게 끌려서 이 사진을 선택했지만, 생각보다 사진 크기가 커서 당황했다.


어쩌면 진실을 알게 된다는 건,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카뮈는 인간이 의미를 찾아 헤매지만, 세상은 그 어떤 대답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 틈, 즉 ‘답 없는 세상과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충돌’을 부조리라고 불렀다. 나는 요즘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린다. 역사를 배우며 느꼈던 무력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아무도 막지 못했는지, 왜 지금까지도 반복되는지- 그 모든 질문에 세상은 침묵한다. 그 침묵 앞에서 나는 답을 찾으려 애썼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침묵을 끝까지 바라보는 용기가 중요한 거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산 위로 돌을 끝없이 밀어올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고도, 그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역사를 아는 일도 어쩌면 그와 비슷하다. 아무리 반복되는 비극이라도, 그걸 외면하지 않고 기억해내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증언자’가 된다. 나는 그 사실이 버겁지만, 동시에 나를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고 믿는다.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까 이제 나는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대신, 알고도 외면하지 않는 법을 배우려 한다. 진실이란 건 누군가의 고통 위에 놓인 돌덩이일지 몰라도, 그 돌을 밀어 올리는 일쯤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답은 여전히 없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서 그 돌을 붙잡은 채,

조금씩,

위로 올려본다.


<참고 문헌>

https://archives.kdemo.or.kr/collections/view/10000075

https://brunch.co.kr/@minishkr/50

https://www.youtube.com/watch?v|7Z_GLu_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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