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그리고
잠깐 여유가 생겨서 내가 쓴 글을 쭉 읽어봤다. 언제 썼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글부터, 며칠 전에 쓴 글까지. 처음엔 별생각 없이 훑어보는 정도였다. 맞춤법이 틀린 건 없나, 이상하게 쓴 문장은 없나, 그런 걸 확인하려던 거였다.
맞춤법은 괜찮았다. 사진도 적당히 들어가 있었고, 내용도 크게 이상한 건 없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뭔가 자꾸 걸렸다. 문장이 자꾸 끊기는 느낌이었다. 리듬이 매끄럽지 않았달까. 처음엔 뭐 때문인지 몰랐는데, 한 문단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니 알 것 같았다.
쉼표가, 너무, 많았다.
한 문장에 쉼표가 서너 개씩 들어가 있었다. 짧은 문장에도 쉼표가 두 개씩 박혀 있었다. 그렇게 보니까 모든 문장이 그랬다. 쉼표 없이 쭉 이어지는 문장이 거의 없었다. 읽을 때마다 호흡이 끊겼다. 문장이 계속 멈췄다 갔다를 반복했다.
명사
1. 언어 문장 부호의 하나. ‘,’의 이름이다. 같은 자격의 어구를 연결할 때 쓰거나, 짝을 지어 구별할 때, 이웃하는 수를 개략적으로 나타낼 때, 열거의 순서를 나타낼 때, 문장의 연결 관계를 분명히 하고자 할 때, 되풀이되는 말을 피하기 위해 일정 부분을 줄여서 열거할 때, 부르거나 대답하는 말 뒤에, 한 문장 안에서 ‘곧’ 따위의 어구로 다시 설명할 때, 한 문장에 같은 의미의 어구가 반복될 때, 도치된 어구 사이에, 바로 다음 말과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 않음을 나타낼 때, 문장 중간에 끼어든 어구의 앞뒤에, 특별한 효과를 위해 끊어 읽는 곳을 나타낼 때, 짧게 더듬는 말을 표시할 때 쓴다.
2. 쉼을 나타내는 기호. 온쉼표, 이분쉼표, 사분쉼표, 팔분쉼표, 십육분쉼표 따위가 있다.
...
말하듯이 쓰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실제로 말할 때 쉬는 지점에 쉼표를 찍었던 것 같다. 아니면 문장이 너무 길어지는 게 불안해서, 중간중간 끊어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의식하지 않고 썼다는 거다. 쉼표를 찍을 때마다 이게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찍었다.
사실 내가 자각하기 이전에 나의 이런 쉼표 남발을 지적받은 적은 전에 한 번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학교에서 논설문 쓰기 대회가 열렸었다. 상은 타지 못했다. 주제도, 뭘 썼는지도, 옆자리에 누가 앉아있었는지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회가 끝나고 며칠 뒤 나를 조용히 불러내어
"쉼표가 조금 적었다면 은상을 탔었을 거야." 하시던
담임선생님의 그 목소리만큼은 너무나 선명하다.
고쳐야 하나 싶었다. 나의 이 고약한 버릇을. 그런데 막상 고치려니까 애매했다. 문법적으로 틀린 건 아니었다. 쉼표를 빼면 문장이 길어지긴 하는데, 읽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내 습관이었다. 쉼표를 많이 찍는 게.
불안해서 쉼표를 찍는다-가 어느 정도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 내가 무의식적으로 쉼표를 찍는 게, 불안함에서 기인한 걸 수도 있지. 불안해서 숨이 차고, 그래서 잠깐씩 멈춰 선다.
어쩌면 이건 단순 글쓰기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너무나 비참하고 그야말로 삶을 벅차하는 존재니까. 인간은 자기 자신과 단둘이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파스칼이 주장한 "기분전환(Du divertissement)" 이론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조용히 혼자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사람들은 멈추는 걸 두려워한다. 멈추면 자기 자신을 봐야 하니까. 그게 견딜 수 없이 괴롭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단둘이 남겨지는 순간, 피하고 싶었던 것들이 밀려온다. 공허함, 무의미함, 죽음에 대한 생각.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인지에 대한 물음. 그런 것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무언가를 한다. 바쁘게 움직인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신다. 멈추지 않는다. 생각할 여유를 만들지 않는다.
파스칼은 이걸 기분전환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즐거워서 오락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오락을 찾는다는 것이다. 왕도 마찬가지고,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멈추는 걸 두려워한다. 멈추면 자신의 비참함을 마주해야 하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바쁨 속에 자신을 억지로 묻는다.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은 문장이 끝났다는 것이다. 다음 문장을 쓰기 위해서 나는 전의 내가 쓴 문장을 되돌아봐야 한다. 지레 겁이 난다. 나의 발자취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까.
나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다시, 또, 쉼표를 찍는다. 쉼표는 문장을 끝내지 않으니까, 쉼표를 찍으면 멈추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다, 이전 문장을 읽지 않아도 된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쭉 나아가면 된다, 문장이 아무리 길어져도 괜찮다, 쉼표로 이어가면 된다, 마침표만 찍지 않으면 된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
,
,
그렇게, 찬찬히, 무너진다.
마침표를 미룬다. 하지만 결국엔 찍어야 한다. 언젠가는 문장을 끝내야 한다. 회피할 나이는 지났잖아.
글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끝은 온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이 글도 끝이 날 것이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도 끝이 날 것이다. 화면 너머의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일도 끝이 날 것이다.
그게 좋은 끝일지, 나쁜 끝일지는... 글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끝일 뿐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끝이 온다는 사실 자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끝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 피할 수 없다는 것.
일단은 놔뒀다. 나의 쉼표도, 나의 글도, 나의 불안함도. 다음에 글을 쓸 때 조금 조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쉼표를 찍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말 여기서 끊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쭉 이어가도 되는지. 마침표를 찍을 때 덜 겁먹기로 했다. 뒤를 돌아봐도 괜찮다고, 나의 발자취가 그렇게 비참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기로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쉼표를 많이 찍었다. 여전히 불안했고, 여전히 멈추기가 무서웠다. 하지만 마침표도 찍었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내가 쓴 문장들을 읽었다. 비참하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그게 전부다. 쉼표를 많이 찍고, 마침표를 미루고, 뒤를 돌아보기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결국엔 마침표를 찍고, 돌아보고, 끝을 맞이할 것이다.
이 글도 이제 끝이다.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