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손으로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이 아니던가. 한 때는 이 말의 의미를 한 톨도 이해하지 못한 채 목에 걸려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뺐었다. 그거 지금 어디 있으려나. 허한 목 부근께가 진짜 믿음의 종말이라 생각했던 시절. 지금은 그저 오래된 물건 하나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질 뿐이다.
중간고사 기간이다, 지금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답형 3번 문제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니터 앞인 게 어색하네.
시험을 앞두고 글이나 쓰다니, 지나치게 학술적인 대한민국 교육체제 밑에서 커간 당신들(물론 나도 그렇다마는)은 내가 제정신인가-싶겠지만 그렇다면 머리에 나는 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걸로 치자.
나는 스스로를 교양 있는 사람이라 말하진 못하겠다. 그래서 니체의 말을 빌려 내 혼란스러운 마음과 불완전함을 조금이나마 정당화해보려 한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혼란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만든다지.
그러니 나의 이 불안과 방황도 언젠가 내 안의 어떤 질서를 낳길 바랄 뿐이다.
요즘 부쩍 한국사에 빠져있다. 열다섯의 내가 들으면 기겁하려나? 빠지게 된 이유를 묻는다면,.. 역사를 얘기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커 보였던 한 사나이 덕분이리라. 마음에 들었던 점은, 수업에서 단지 과거의 사실을 나열한 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어떤 마음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던 점이다. 수업을 듣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치가 바뀔 때, 역사는 움직인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에 이상하게도 끌렸다. 니체가 떠올랐다.
니체에게 있어서 인간의 역사는 곧 가치를 전복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다.
그는 기존의 가치들이 허무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새로운, 더 건강한 가치를 세우기 위해 소크라테스 이후 굳어버린 형이상학적 도덕을 부수려 했다. 원래 가치는 '자연'에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연을 해석했고, 해석은 언제나 왜곡을 낳는다.
니체는 그래서 거슬러 올라간다.
가치의 시작으로.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그건 단지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치의 시작인 자연으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던 니체처럼, 결국 허무주의는 자연으로의 귀환으로써 해소되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은 나무가 울창하고, 물이 졸졸 흐르는, 내셔널지오그래피에 나올만한 푸른 자연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자연이다. 인간의 본성, 생의 충동,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투박한 감각에 더 가깝다. 니체에게 자연은 억눌리고 왜곡된 본래의 삶의 힘이었다. 그는 그 힘을 회복함으로써, 기존의 도덕과 가치가 남긴 공허함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았다. 능동적 허무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가치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가 삶을 긍정하며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니체에게 ‘귀환’은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라, 본래적 힘으로의 회복이었고, ‘극복’은 체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무너뜨림이었다.
...
그래서 역사가 니체의 뜻대로 지고지순하게 흘러갔는가?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20세기 초, 인류는 허무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왜곡된 힘의 의지와 맹목적인 이념의 이름으로 세계를 두 차례나 파괴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은,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으로 밀고 들어간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니체가 말한 '자연적 가치'는 회복되지 못했고, 오히려 허무와 권력이 결합하여 역사상 가장 잔혹한 폭력을 낳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간은 본질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세계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또 다른 형이상학적 질서 속으로 분열되었고, 삶의 충만함보다는 이념의 정당성이 중요시되는 냉전 체제의 긴장 속으로 들어갔다. 니체가 그토록 부쉈던 가치의 틀은, 다른 얼굴로 되살아났다.
니체가 꿈꾼 귀환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가 말한 자연은 결국 여느 철학자들처럼 철학 속에만 남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단번에 무너진 건 아니었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렀고, 전쟁과 냉전은 그 흐름을 가속시킨 것이다.(2차 세계대전은 본질을 무너뜨렸고 냉전은 다른 얼굴의 형이상학을 다시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인간은 본질로 돌아가기보다, 또 다른 이념의 이름 아래 자신을 던져버렸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부수고 무엇을 세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역사는 거대한 흐름이지만, 그 흐름은 결국 개인의 작은 선택, 작은 충동, 작은 긍정들로 만들어진다. 니체가 말했던 ‘자연’이란 어쩌면 삶의 본래적인 떨림을 그 불완전한 몸짓 그대로 긍정하려는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용기의 흔적을,
한 시대의 숨결을 담아내려 했던 선생님의 말에서,
그리고 내가 질문하고 사유하는 이 시간 속에서.
조금씩 더듬어 가고 있는 중이다.
-2025.09.26-
<참고 문헌>
-https://brunch.co.kr/@minnation/3115
-https://blog.naver.com/3058833/220743990140
-2025년 9월 1일 월요일 12시 10분에 시작한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