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애 두번째 7살..(4부)

365일 먹어도 맛있는 산나물 죽..

by 정예윤


살아오면서 엄마아빠한테
고마운게 세가지 있다



첫번째는 아빠가 정년퇴직하신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생을 묵묵히
아침 8시면 출근을 하셨던 아빠

한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아빠가 걸어오신 그길이 꽃길만은 아니었을텐데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빠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하고 견뎌내셨을지
아빠의 인생에 정작 본인은 없었던
아빠의 인생을 가늠해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두번째는 두분이 부부로 잘 살아주신거다

엄마 아빠 두분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찌 좋은 일만 있었을까..
이런저런 위기도 많았을텐데 그래도 우리에게
편부 편모의 상처를 주지 않으시고
어느 한분이 일찍 돌아가셔서
부재로 인한 슬픔을 주지 않으신거



세번째가 젤 중요한거..

바로 나를 할머니집으로 보내준거다

내 인생을 좌우하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내 삶의 자양분을 나는 그곳에서 만들었다
지금껏 살아온.. 현재 살고 있는 나의 삶은
7살 그 시절에 이미 99%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의 내삶은 7살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똑같은 삶속에 한 아이는 7살 꼬마였고
또 다른 아이는 50살이 된 7살의 그 꼬마일뿐..




행복한 유년은 일생을 치유하지만
불행한 유년은 일생동안 치유가 필요하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7살의 봄날은..



할머니를 따라 들판으로 나가면
지천이 다 봄나물이었다

나생이(냉이) 쏙새(씀바귀) 질창구(지칭개)

할머니는 땅위에서 자라는 온갖 풀이름과
나물이름은 다 알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았던 나는 할머니가 한번만
가르쳐주면 절대 까먹는 일이 없었다

할머니는 하지말라 하셨지만
나는 호미를 들고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오늘날 나의 주특기인 폭풍호미질은
이미 7살때 전수받아두었던 거였다



몇해 전 이곳 시골로 이사한 후

온갖 잡풀로 가득했던 폐허같은 땅을

그해 봄 ..

오직 호미하나로 꽃밭 80평을
이뤄낸건 다 그때의 내공이었다




2021년 봄.. 호미하나 들고 내가 직접 만든 꽃밭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들판의 봄나물에 꽃이 피기시작하자
할머니는 들판이 아닌 산으로 가셨고
봄나물대신 산나물을 뜯어오셨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할머니가 들고오는 산나물은 그 양도 종류도
늘어나는 자루 수만큼 많아졌다


할머니가 산에서 내려올때쯤엔 아궁이위
가마솥에는 나물 삶을 물이 끓고 있었다


매일 저녁 엄청난 양의 나물을 삶다보니
다음날 물동이에 채워야할 물양도 늘어났다
물동이에 물을 다 채우고 나면
대나무발 위에 널어놓은 나물들도
한번씩 뒤적거려 줘야했다


데치기전에 나물은 생김새가 다 다른데
데치고 나면 나물은 다 똑같이 생겼다

뒤적거리면서 아직 덜 마른 나물들은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며 생으로 먹었을때의
맛과 향을 기억해내고 혀에 전해지는 또다른
맛과 향으로 나물이름을 유추하곤 했다


쓴.신.짠.단.의 기본맛을 넘어서서 음식고유의
맛과 향에 반응하는 내 섬세한 미각은
이미 7살때부터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산에 잠시 다녀와야 했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라 불쏘시개로 쓸
갈비(땅에 떨어져 쌓인 솔잎)를 줏어야 했고
마른 나뭇가지들도 줏어와야했다

갈비를 끌어담는것도 재밌었고
나뭇가지를 줍는것도 재밌었다

결코 재밌을수 없는 일이 재밌었던건
내가 불피우는걸 너무 좋아했기때문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려면 갈비도 나뭇가지도
있어야 하는 거라서 나는 갈비를 긁어모으고
나뭇가지를 줏어 한쪽팔에 얹어놓으며
얼른 집에가서 불피울 생각에 마냥 신이 났었다


할아버지가 생존해 계셨더라면
나는 지게 지는법도 배울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궁이속 잿더미를 살살 뒤적거리면
아침에 할머니가 밥하면서 만들어놓은
불씨가 빨갛게 보인다..


재속에 숨어있던 불씨를 아궁이 앞쪽으로
살살 끌어내고 그 위에 잘 마른 갈비를 한줌 얹어
바람을 호호 불어주면 하얀 연기와 함께
빨간 불씨가 빨간 불꽃이 되어 살아난다
그럼 불꽃위에 갈비를 또 한줌 살포시 얹어준다
한꺼번에 많이 얹으면 불길이 살아오를때까지
회색빛 매운 연기가 장난아니기 때문에
갈비 한줌 얹는거에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갈비를 태우는 불길이 제법 커지면 이때쯤
마른 나뭇가지를 켜켜이 쌓아 얹어준다
불이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붙었다 싶으면
그위에 장작 몇개를 엇갈리게 올리면 된다


아궁이에 불 지피던 초반 삼사일만 연기에
눈이 매웠을 뿐 불과 며칠만에 나는 연기없이
기가 막히게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누가 가르쳐준적 없이 오직 할머니 어깨너머로
본것을 그대로 흉내낸게 전부였다


불피울때마다 나는 내가 할머니보다 불을 더
잘피운다 생각하며 혼자 키득키득 웃곤 했었다

타인의 능력이나 재능을 보는대로
답습하고 터득해서 내걸로 발전시키는 능력..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고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내스스로 내자신을 칭찬하고
문득 집에 있는 언니나 동생은 이런걸 모를거라
생각하니 왠지 내가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
된거같은 근거없는 자신감..


데리고 앉아 가르쳐도 될까말까한것들을
7살 꼬마는 교육이 아닌 일상에서 하나 둘
그렇게 자연스레 익혀가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문득 화덕을 갖고 싶은건
7살 그때처럼 화덕위에 솥을 얹고
갈비를 긁어모아 불을 피우고 싶은거다


요렇게 생긴 야외화덕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



365일 먹어도 맛있는 산나물 죽..



할머니 집은 강원도 두메산골..
봄이 깊어가면서 온산에는 산나물이 지천이었고
할머니집에서 사는 동안
내가 가장 바빴던 날들이기도 했다


어린소녀와 할머니에게 봄은 풍요였다

그간 묵은 나물만 먹다가 상큼한 향내 뿜뿜나는
파릇파릇한 봄나물과 산나물이 입에 들어가니
할머니와 단둘이 하는 저녁밥상은
하루중 젤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우체부아저씨의 자전차벨이
들리면 나는 잽싸게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할머니가 오길 기다렸다
할머니를 기다렸고 할머니가 이고 지고 올
산나물 보따리를 기다렸다

내가 젤 좋아했던건 홑잎나물(화살나무 새순)

두개의 가마솥이 열심히 끓고 있다
한쪽솥은 산나물을 삶고 있었고
다른쪽 솥엔 우리의 저녁이 끓고 있었다


산나물을 다 삶고나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밥상이 차려졌다


밥그릇 두개 간장종지 하나..

할머니 집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매일같이 먹었던건 밥이 아니라 나물죽이었고
내가 너무 좋아했던건 밥이 아니라 나물죽이었고
그때 생각하면서 지금도 종종 해먹는게 나물죽이다


건나물을 넣고 끓인 죽은 수저로 떠먹는거보다
입으로 후루룩 마시는게 더 편할만큼 히멀건했는데
봄나물이 풍성해지니 밥상위의 죽그릇에도
향긋한 봄나물이 한가득이였다

내가 그렇게 맛나게 먹었던 이 나물죽이
훗날 울 엄마를 밤새 울게 만든 주범이 되었다

할머니집에서는 매일 나물죽을 먹었고
집에 와서는 매일 밥투정을 하며 밥을 먹었다

나물죽을 끓여달라고.. 된장넣고 나물넣고
이렇게 이렇게 만드는거라고 떼를 쓸때만 해도
할머니집에서 한두번 먹어봤을 그 음식을 기억하는
어린딸을 다독이며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었던

엄마는..

어린 둘째딸이 할머니집에서 먹은게
삼시세끼가 전부 나물죽이었다는걸 알게 된날..

나물죽을 내놓으라며 울고불고 땡깡을 부리는
어린 둘째딸을 다독여놓고 석유곤로에 불을 올려
나물죽을 끓이며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내눈엔 엄마의 눈물보다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죽이 먼저 보였다




다음 이야기는 5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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